제목 조선 중종 때 궁중 내각에 비장되어 있던 사서 목록 추적 글쓴이 localhi 날짜 2014.05.26 19:32

               조선 중종 때 궁중 내각에 비장되어 있던 사서 목록 추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신상구 

   일십당 이맥이 저술한 『태백일사』 발문跋文)을 보면 '내가 괴산에 유배되었을 때 적소(謫所)에서 근신하고 있으니 너무 무료하여 집에 간직해 두었던 사전(史典)들과 노고들에게 들은 이야기, 그리고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16년 만인 경진년(중종 15년 1520)에 찬수관(纂修官)으로 있을 때 내각에 소장된 비밀스런 책들을 읽고 이들을 모두 합해서 책을 엮었는데 이름하여『태백일사』라 한다.' 고 기록되어 있다.

  『태백일사』는 우리 동이족의 역사책으로 단군조선과 그 이전 환인의 환국, 환웅의 배달국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맥은『단군세기』를 지은 고려시대 행촌 '이암'의 현손자이며, 또 『환단고기』를 감수한 구한말 해학 '이기' 선생이 후손이다.

   중종 당시 내각에 소장되어 있던 많은 상고사서들의 목록은 이맥이 상고사서들을 보기 63년 전인 세조와 51년 전인 예종 때의 '서적 수거령' 기록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세조는 즉위 3년만인 1457년 5월 26일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였다.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그리고 예종은 즉위 1년만인 1469년 9월 18일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였다.

   “예조(禮曹)에 전교하기를,"[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志公記)》·'표훈천사(表訓天詞)'·'삼성밀기(三聖密記)'·'도증기(道證記)'·'지이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文泰)·옥거인(玉居仁)·설업(薛業) 세 사람의 기(記) 1백여 권과 '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명경수(明鏡數)' 및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외방(外方)에서는 가까운 도(道)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道)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 천구(公私賤口)에게는 면포(綿布) 50필(匹)를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論賞)하고,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하였다.

   한편『환단고기』에는 소개되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 사서 13종을 알아보면, 중종 당시 내각에 소장되어 있던 비서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환단고기』소개된 행방불명된 사서 13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대변경(大辯經) 2.표훈천사(表訓天詞) 3.삼성밀기(三聖密記) 4.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5.배달유기(倍達留記) 6.삼한비기(三韓秘記) 7.신지비사(神誌秘詞) 8.오제설(五帝說) 9.유기(留記) 10.태백진훈(太白眞訓) 11.진역유기(震域留記) 12.진단구변도(震檀九變圖) 13.조대기(朝代記)

   상기한 13종의 고서 중에서 '표훈삼성밀기', '대변경', '조대기'는 세조 3년 수거목록에 그 이름이 확인되고 있고, 환단고기에 실린 '삼성기'는 세조 때에 이미 나왔으며, '표훈천사', '삼성밀기'는 예종 1년 수거 사서목록에서 확인이 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세조 때 '표훈삼성밀기'가 예종 때와 환단고기에는 '표훈천사', '삼성밀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맥이 중종 때에 『태백일사』를 저술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맥은 예종 때 목록에 있는 '표훈천사'와 '삼성밀기'등을 참고로 하여 『태백일사』를 편찬한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되고 있다.

  『태백일사』는 도가 사서로 유학의 입장에서는 이단이 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사서가 후대에 불태워졌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임진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사라졌거나.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우리의 고서를 수거해 불태우거나 불법으로 밀반출할 때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으로 한국을 강탈한 일제는 1905년에 설치한 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명칭을 바꾸고, 1910년 10월 1일 관보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의하면 일본의 최고 권력자였고, 한국민의 독립운동을 압살했던 초대총리 데라우찌 마사타케(寺內正穀)는 1910년 11월부터 전국의 각 도, 군 경찰서를 동원하여 1911년 12월 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제1차 전국 서적 색인 목록에서 단군조선 관련 고사서 등 51종 20여만 권의 사서를 수거하여 불질렀다. 또 단군조선 등 우리 역사를 왜곡, 말살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사편수회에서는 1923년부터 1937년까지 15년 동안 차입한 사료가 무려 4,950여 종이라고 1938년 발행된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에서 밝히고 있다.   

   일본의 사학자인 하라타 사카에루(原田榮)는 그의 저서인『역사와 현대』(1981.4.25)에서 1923년 7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구로이타(黑板) 고문이 대마도를 사료 탐방하였을 때 한국과 관계가 있는 문서, 고기록 등이 다수 대주구 번주(藩主ㆍ영주) 종백작가(宗伯爵家)에 있는 것을 알고 고문서류 66,469매, 고기록류 3,576책, 고지도 34매 등을 은폐 또는 분서(焚書)하였고, 조선총독부 취조국 역시 수거한 사료 중 단군조선 등 한국사를 왜곡 편찬하는데 필요한 일부 서적만 남기고 모두 불태웠으며, 사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한반도는 물론이고 대마도, 중국, 만주, 연해주까지 그 범위를 확대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일본의 한 교수가 찾아낸 일본내 한국서적이 무려 5만여권에 달한다고 하니, 우리가 잃어버린 사서의 상당수가 정창원, 동경대 도서관,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가정에 비장도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런데, 1889년 충북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 출생으로 해방 직전인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도쿄 궁내청 서릉부 황실도서관에서 조선전고 조사사무 촉탁(특수 계약직) 사서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박창화(朴昌和, 1889-1962)가 광복 후 귀국해 청주사범학교 역사교사로 근무할 때에 청주사범학교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최기철 박사와 재야 민족사학자인 최태영 박사에게 증언한 바에 의하면, 박창화가 도쿄 궁내청 서릉부 황실도서관에 비장되어 있는 수많은 우리 고문서를 직접 눈으로 보고 분류작업까지 했다. 그리고 박창화는 일본 왕실도서관에 보관중인 수많은 사서들이 조선총독부가 수탈해 간 것임을 확인했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특히 단군 사료가 많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 후 1945년 광복 직전에 자료를 분류하고 분석하던 중 미국의 B-29 포격이 시작되자 일본 정부는 수 많은 우리 고서만은 지켜야 한다며 오하리(尾張) 공작 자택 지하실로 사서들을 옮겼다. 그 때 박창화도 직접 왕실문고를 옮기는 일에 참여했다. 박창화는 해방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옮긴 사서들의 정확한 행방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오하리의 집 지하실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거나, 아니면 다시 왕실도서관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최기철 박사는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이병도(李丙燾)에게 일본이 수탈해 간 고대사 관련 사료의 존재와 이를 반환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알렸으나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1957년 문교부 편수국장을 방문하여 박창화의 증언을 알렸으나 그 역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실망했다.      

  왕실도서관인 서릉부(書陵府)는 4층 짜리 신식 콘크리트 건물 3개동으로 도쿄 황거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인도 1층에 위치한 사무실 겸 열람실에서 서릉부 입장표와 열람증을  끊으면 황실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도서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 한국 학자들이 마음먹고 접근하면 연구 테마가 적지 않을 거라고 한다.

  아무튼 한국 사학계와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불법으로 반출된 우리 고서들을 하루 빨리 반환해야 한다. 만약 사학계나 정부가 해외로 불법 반출된 우리 고서들을 반환하는 데에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재야사학자나 국민들이라도 발 벗고 나서서 환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 하면 역사는 우리의 혼이요, 넋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조선왕조실록』세조, 예종, 성종조.
   2. 한배달, 계간『한배달』 40호(1998년 겨울호), pp.70~74.  
   3. 박창화 찬술 김성경 번역 통선생 편집, “고 남당 박창화님의 고백 - 일제의 만행, 고사서 분서 및 반출”, blog.naver.com. 2013.11.20.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 57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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