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동양평화를 염원했던 평화주의자였다 글쓴이 localhi 날짜 2014.02.06 01:20
       안중근의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동양평화를 절실히 염원했던 평화주의자였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신상구(辛相龜)


         1.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은 박근혜정부의 대중국 외교 성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6월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하얼빈역 의거 현장 바닥에 표지석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표지석이 아닌 별도의 기념관을 세워 표지석보다 훨씬 더 뚜렷하게 안 의사의 의거를 외부에 알리도록 했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의거의 현장인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 시 하얼빈 기차역에 3억 원을 투입해 안중근 기념관을 건립했다. 그리고 중국은 2014년 1월 19일 오후 1시 40분 하얼빈역 앞 광장에서 쑨야오(孫堯) 헤이룽장 성 부성장, 쑹시빈(宋希斌) 하얼빈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을 가지고, 그 날 오후 2시부터 일반에 무료로 개방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하얼빈 시와 시 철도국이 역사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20m가량 떨어진 1층 귀빈대기실의 일부를 개조해 100여 m² 규모로 마련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외부는 1909년 의거 당시 하얼빈역의 외양을 재현했으며 주변과 구별되도록 노란색으로 꾸몄다. 기념관 정문 위에 새겨 넣은 시계는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했을 때의 시간인 오전 9시 30분을 가리키도록 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청동으로 된 높이 70cm가량의 안 의사 흉상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크게 안 의사 집안의 가정교육과 사상, 애국운동과 구국교육 실천, 의병투쟁과 단지(斷指) 동맹, 하얼빈에서의 열하루 등으로 구성됐다. 안 의사의 가계도부터 시작해 친필 휘호(복사본)까지 200여 점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으며 대부분 중국어와 한글을 병기했다. 특히 전시관은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1번 플랫폼을 내부에서 훤히 바라볼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약 10m 거리인 플랫폼 쪽을 향해 바닥에서 천장까지 통유리를 설치했다. 플랫폼 위에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격살 사건 발생지(1909.10.26)’라는 현판을 걸었고 안 의사와 이토가 서 있던 자리를 표시한 삼각형과 사각형의 대리석도 새것으로 바꿨으며 조명도 달았다. 성 정부 관계자는 “안에서 현장을 잘 내려다볼 수 있게 기념관 바닥을 2m가량 높였다”고 말했다. 그동안 플랫폼에는 삼각형과 사각형 표시만 있을 뿐 설명은 없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길게는 안 의사의 의거 105년, 짧게는 우리가 중국에 현장 재정비를 요청한 2006년 이후 9년 만에 숙원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014년 1월 2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안 의사의 의거 장소인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 안중근기념관이 개관된 데 대해 “안중근에 대한 일본의 견해는 일본의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한·중 양국에 누차에 걸쳐 우리 견해를 전달해왔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해 한국정부의 강한 반발을 샀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읽어보면, 안중근 의사는 분명히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동양평화를 염원했던 평화주의자였음을 잘 알 수 있다.

                 2.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의 역사적 의의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그가 사형선고를 받고 뤼순 감옥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다가 1910년 2월부터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그 해 3월 26일에 일제가 사형을 집행하는 바람에 당초 구상했던 원고를 다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미완성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3국 간의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체 구성?동북아 3국의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국제분쟁 지역인 여순항의 중립화?동북아 3국의 공동 평화 유지군 창설 등을 역설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간의 약육강식의 국권 침탈이 아니라 공조와 협력, 연대를 통한 동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한민족의 고유문화인 한국선도(韓國仙道)의 핵심 사상인 삼원조화(三元調和)의 홍익철학(弘益哲學)에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잘 부합되고 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100년 전에 <동양평화론>에서 구상했던 한?중?일 3국간의 협력 방안은 3국간 협력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의 동북아 국제정세에도 아주 적용 가능성이 매우 높은 탁견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에서 울린 6발의 총성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의거의 신호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평화와 평등사상인 <동양평화론>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역 의거는 일제시대에 애국지사들이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1911년에 무창에서 일어난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辛亥革命)에도 영향을 끼치고, 한?중 독립운동을 연결시켜 주어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큰 것으로 사료되고 있다. 

  그리하여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그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했다. 이를테면 2009년 10월 21일 오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유이궁(友誼宮)에서는 하얼빈 사회과학원 주최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려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오페라 ‘안중근’의 극본을 집필한 왕훙빈(王洪彬) 하얼빈시 전 문화국장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 사상이 한국은 물론 중국과 세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며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그가 바랐던 동양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길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유사한 동북아평화공동체 등과 같은 주장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때마침 정권교체가 이뤄진 일본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제기되어 안중근 의사가 1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 혜안을 가진 위대한 선각자였음을 실증해 주고 있다고 한다.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 5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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