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국문단에 떠도는 친일 작가들의 망령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7.24 19:41
                                                한국문단에 떠도는 친일 작가들의 망령


   지난 해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의 장편소설 <화산도>(보고사)가 완역됐다. 2백자 원고지 3만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해방 후 친일파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권력을 재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며, 제주의 4·3은 그 과정에서 왜곡되고 이용당했다.” 이러한 내용의 소설이니, <화산도>에 친일파의 면면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중 춘원 이광수의 창씨개명에 관한 부분을 여기 소개한다.
    “2천6백 년 전에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즉위한 곳이 나라(奈良)의 가시하라(橿原)라는 곳이다. 그곳에 가구야마(香久山)라는 산이 있는데, 자신은 유서 깊은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성을 ‘가야마(香山)’라고 하고, ‘광수(光洙)’의 ‘광(光)’ 자를 따고, ‘수(洙)’는 ‘내지(內地)’ 식으로 하면 ‘랑(郞)’이 되기 때문에,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했다. 송구스럽지만 읽는 법도 천황폐하처럼 일본식 이름을 갖는 것이 조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고, 자신도 자신의 자손도 천황폐하의 일부로 살아가는 길” - 김석범의 <화산도> 12권 248쪽
 
                                                               “우리는 반드시 20년 후 돌아온다” 
 
    해방 이후,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국과 손잡은 그들은 1949년 6월 6일 민족주의자들로 결성된 반민특위를 ‘역청산’하기에 이른다. 반민특위 해체 20일 후 경교장(2013년 3월 복원, 강북삼성병원 내 위치-편집자 주)에서 일어난 김구 암살 또한 ‘역청산’의 상징적 사건으로 남아있다.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전 영역에 걸친 친일파의 득세 속에서 그들의 전력(前歷)은 은폐되는 듯했다. 그러나 1966년을 기점으로 상황은 변모해 일제강점기와 친일파에 관한 연구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점이 된 것은 임종국의 <친일문학론>(평화출판사, 1966)이다. 즉 <친일문학론>의 발간은 한국문학사의 사건을 뛰어넘어 한국지성사의 사건인 것이다. 문학연구자였던 임종국이 황급히 <친일문학론>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는 바로 1965년에 일어난 한일회담이다.
“한일회담으로 내게는 하나의 전기가 왔다. 만일에라도 제2의 대일(對日) 예속의 ******점이 된다면 하는 우려가 나의 문학보다는 민족 현실을 앞서는 문제로 하고 말았다. 8개월의 긴급 자료 조사와 집필을 통해 <친일문학론>을 내면서 나는 내 문학쯤 희생시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밀려올 일세(日勢)와의 싸움인 침략·배족사(背族史)의 규명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임종국의 <한국문학의 민중사> 서문
    임종국은 왜, 그토록 한일회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71년 전, 194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임종국은 경성공립농업학교에서 아직 무장해제가 안 된 일본군 병사들과 마주친다. 그들 중 한 명이 임종국에게 물었다. “우리는 전쟁에 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임종국이 조선이 독립하게 돼 좋다고 하자 일본군 병사가 무섭게 노려보았다. 순간 두려움을 느낀 임종국은 “일본이 전쟁에서 진 것은 안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일본군 병사는 결심인지 저주인지 모를 한 마디 말을 내뱉는다.
“우리는 반드시 20년 후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을 지킨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인 1965년에 한일회담이 진행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만주군 중위 출신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다. 
    올해가 2016년이니 <친일문학론> 출간 이후 반세기가 흘렀다. 이 반세기는 지난한 이념 투쟁의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투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한편에는 민족문제연구소로 대표되는 친일잔재 청산의 움직임이 자리한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국민모금을 통해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연구소의 활동은 국민들의 민족의식을 원동력으로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설립취지를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의 유지를 받들어 1991년 설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임종국의 상징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친일문학론> 발간 50주년, 우리의 슬픈 자화상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친일파 선대(先代)로부터 대한민국의 물적 토대를 물려받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자리한다. 이는 문학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조선일보사에서 운영 중인 동인문학상의 경우를 보자. 1933년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한 방응모는 일제에 적극 협력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김동인 역시 황군(皇軍) 위문 목적의 ‘문단사절’을 조직하는 등의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러니 동인문학상은 친일에 뿌리를 둔 언론권력이 친일문학가를 기리는 사례라고 하겠다.
조선일보사와 더불어 막강한 언론권력인 중앙일보사에서는 2001년부터 미당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해왔다. 미당 서정주도 친일행적이 뚜렷한 인물이다. 그러나 훗날 미당은 자신에게 붙은 ‘친일파’ 딱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나는 다만 종천순일(從天順日)에 불과하다”는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문학상 제정 당시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으므로, 중앙일보사는 제정 근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친일·친독재에 관한 부분은 재조명돼야 한다는 논란이 일었으나, 한국현대사에 끼친 공이 흠을 덮고도 남는다는 판단 아래 이 상을 제정하게 됐습니다.”
    이 무렵 문단 일각에서는 “문학작품과 삶은 별개 영역이므로 함께 묶어 논의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얼마 전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 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인문학상, 미당문학상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언론권력은 문학인들의 친일 이력에 관대하며, 문단에서 활동 중인 대부분의 작가·시인·평론가들은 이에 대해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 설혹 있다 해도 언론사와의 결탁으로 얻을 수 있는 각종 혜택들 -  지면 확보를 통한 광고 효과, 문학상 수상에 따른 상금, 심사자로서의 권위 등 - 을 포기할 의지가 박약하다. 그러니 안을 발의했던 이들은 김동인도 서정주도 허용되는 마당에, 춘원 이광수·육당 최남선이라고 굳이 문학상을 제정 못할 이유가 없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반(反)친일문학 투쟁은 계속 된다
 
    대체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의 제정을 추진했던 한국문인협회(문협)는 어떤 조직이며,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부는 1961년 6월 17일 포고령 제6호를 공포해 기존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단체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12월 5일 공보부와 문교부는 이전 문화예술 단체의 대표들을 불러 모아 문화예술단체의 단일화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12월 30일 출범한 대한민국 유일의 문학인 단체가 바로 문협이다.
    ‘순수문학’을 이념으로 내걸었던 문협은 문학의 현실비판 기능을 행사하는 ‘참여문학’과 공공연히 맞서왔다. 또한 문협의 기관지 <월간문학>은 청와대로 찾아간 이사장 김동리가 대통령 박정희의 지원을 받아 1968년 11월 창간한 잡지다. 따라서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의 제정 추진은 문협이 내세웠던 순수문학이라는 이정표를 따라간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문협에서는 문단 안팎의 강력한 반대에 떠밀려 두 상의 제정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아마 이번 벌어졌던 해프닝과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친일에 뿌리 내려 힘을 키워온 우리 사회 기득권의 위세가 워낙 막강하기에, 이러한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필자는 이 글에서 친일문인과 언론의 관계만을 예시했을 뿐, 그들이 교과서를 통해 한국의 대표문인으로 자리 잡는 체계라든가, 대학의 사제관계나 문단의 친분관계를 통해 작동하는 가치 판단의 재생산 구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의 영향력이 여기에 미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니 누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모윤숙문학상, 노천명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말고도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제정되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이것이 <친일문학론> 발간 5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것이다.  
  
<글·홍기돈>
주요 저서로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소명출판), <김동리 연구>(소명출판) <문학권력 논쟁 이후>(예옥) 등이 있다. <비평과 전망>, <시경>, <작가세계>의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고문헌>

           1. 홍기돈, " 한국문단에 떠도는 친일 작가들의 망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9.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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