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창덕궁 후원 옥류천 계곡 산수와 정자를 배경으로 벌어졌던 유상곡수연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2.01.16 16:18

                       창덕궁 후원 옥류천 계곡 산수와 정자를 배경으로 벌어졌던 유상곡수연  

연경당 장락문 앞의 괴석. [사진 이향우]

연경당 장락문 앞의 괴석. [사진 이향우]

   후원의 정자 옆에는 곳곳에 기이한 괴석을 담은 석분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괴석을 통해 오묘한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깊은 산수(山水)간의 풍경을 보았다. 애련정 뒤편에 놓인 두 개의 괴석은 200여 년 전 동궐도에 그려진 대로 남아 있고, 승재정이나 존덕정에도 괴석을 놓아 대자연을 함축된 모습으로 즐기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집 뒤뜰이나 후원 정자 곁에 괴석분을 두고 괴석에 이는 바람소리를 즐겼고 눈 내리는 풍경을 즐겼다. 그들은 괴석을 내 마음에 들여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자연으로 아끼고 사랑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너도나도 ‘괴석치레’를 하느라 열을 올렸다. 요즘 남자들의 시계나 커프스 버튼, 또는 구두 등 명품치레 같은 호사로 생각할 수 있다.

                                                                 옥류천 영역

  옥류천 영역의 태극정과 청의정. [사진 이향우]

옥류천 영역의 태극정과 청의정. [사진 이향우]

   창덕궁 후원에서 정자가 많이 세워진 곳은 옥류천 영역이다. 옥류천은 마치 창덕궁 후원의 별세계 같은 의미를 가진 특별한 골짜기다. 후원을 즐기는 방법은 최대한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며 그 느린 시간 동안 자연과 교감하기이다. 만약 누군가 창덕궁 후원 옥류천 계곡을 보고 싶거든 옥류천으로 가는 숲길을 걸으며 자연이 그려놓은 그림과 소리, 공기까지도 몸으로 느끼면서 숲과 교감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옥류천 계곡으로 내려가기 전에 언덕 정상에서 만나는 정자는 취규정이다.

   취규란 별들이 규성으로 모여든다는 뜻으로 규성(奎星)이란 이십팔수(二十八宿)의 열 다섯째 별자리로 문운(文運)을 주관한다고 하는 별이다. 옛사람들은 이 별이 밝으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했다. 어쨌든 취규정은 별을 바라볼 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 정자이다. 후원 언덕길을 오래 걸어 숨이 찰 때는 서두르지 말고 이 취규정에서 한 숨 돌리고 가는 것도 좋다.

   돌과 물과 정자가 있는 후원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한 곳이 옥류천이다. 창덕궁 후원에 지은 대부분의 정자들은 커다란 못을 파고 물을 담아 주변에 정자를 세우고 자연과 교감을 했다면 이곳은 계곡을 그대로 살려 그 주위에 정자를 세우고 일대를 소요한 듯이 보인다.

   한국의 정자는 우선 지나치게 자연을 압도하지 않고 자연과 어울려서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지어졌다. 이는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했던 옛사람들의 사고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노자의 무위자연으로 어떤 일이건 너무 억지로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그냥 두라는 자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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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동양인이 생각하는 자연이라는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영어단어 ‘nature’ 보다는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인데 자연은 스스로 내버려 두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스스로 유지해 간다는 관점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인공물을 가장 최소화한 것이 후원의 정자이다. 비틀즈의 노래 가사처럼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옥류천. [사진 이향우]

옥류천. [사진 이향우]

   옥류천 계곡은 인조 14년(1636)에 창덕궁을 품고 있는 응봉(鷹峯)자락의 물길을 소요암 뒤쪽으로 끌어들이고, 계곡과 함께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최소한의 인공적인 변형을 주어 주변을 조성했다. 취한정을 지나 옥류천 골짜기로 들어가면 소요정(逍遙亭)이 있다. 노닐 소(逍), 거닐 요(遙)자를 써서 유유자적한다는 뜻의 소요정이다. 그리고 너럭바위에 보이는 ‘ㄴ’자형 물길은 유상곡수연을 하던 흔적이다. 너럭바위에 얕은 홈을 파서 물길을 만들고 물이 떨어지는 폭포를 만들었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은 원래 삼짇날 정원에서 술잔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 올 때까지 시를 읊던 연회로, 동양의 선비나 귀족들이 즐겼던 연회다.

   왕실에서는 종종 군신 간에 서로 화답하는 놀이로 유상곡수연을 즐겼다는 기록이 보이는 데 유상곡수연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진 것은 4세기경에 쓰인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로, 문인들을 모아 굽이진 물줄기에 줄서 앉아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 내용이다.

   소요정에 앉아 바라보는 커다란 바위에는 인조 어필로 옥류천(玉流川)이라 쓰여 있고 그 위에 1670년 숙종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다. 군주이기 이전에 선비로서의 풍류를 즐기신 왕의 여유를 읽을 수 있다.

                                             비류삼백척(飛流三百尺) : 흩날리는 물길은 삼백척인데,
                                             요락구천래(遙落九天來) : 아득히 먼 하늘로부터 떨어져 흐르네
                                             간시백홍기(看是白虹起) : 그 모습 보고 있으니 흰 무지개 일고,
                                             번성만학뢰(飜成萬壑雷) : 온 골짜기에 우레 소리 가득하다.

                                              상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제왕의 시

동궐도. 고려대소장본 사본.

동궐도. 고려대소장본 사본.

                                                                              상림삼정
   옥류천 지역에서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을 경치가 뛰어난 상림삼정이라 하고 숙종은 태극정을 제왕이 수신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지금의 모습은 기둥만 있지만 아직도 기둥에는 문을 달았던 문날개가 남아있고 동궐도에는 태극정(太極亭)에 창호문이 달려있다. 태극정에서 후원에 거둥한 임금에게 음식이나 다과를 올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요정에서 바라보는 태극정의 왼편으로 현재 궁궐의 유일한 초가정자 청의정이 있다. 64괘와 천원으로 표현된 청의정은 하늘의 태극을 상징하는 정자다. 그리고 청의정을 건너는 돌다리 아래 수조의 물속에 태극이 숨어 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건축물에 뿐만 아니라 숨겨진 물속에도 우주의 원리를 부여해 놓고 그 큰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다.

   청의정 앞 연지는 어느 시점엔가 논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문화재청 창덕궁 관리소에서 직원과 시민들의 참여로 예전 왕의 친경례를 소박한 의미로 재현하고 있다. 실은 이곳 청의정 논에서의 벼 수확은 썩 신통치 않지만 궁궐 안에서 농사를 짓던 국가의식이 현대에까지 전해져오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겠다.    

                                                                        <참고문헌>                                                                     1. 이항우, "옥류천 계곡 산수와 정자 연경당 장락문 앞의 괴석", 중앙일보, 2022.1.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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