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별세 50주년 회고 중앙일보 대담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8.08 06:41


                                        고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 별세 50주년 회고 중앙일보 대담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 별세 50주년 ‘영부인 육영수’ 회고


“사모님!” “컥!” “사모님!” “컥컥!”


50년 전인 1974년 8월 15일 한낮 서울대병원 응급실. 문세광의 총탄을 맞고 실려 온 육영수 여사를 살리려고 양 발목을 부여잡고 절규하다 사실상의 임종(臨終)을 지켜본 34세 청년이 있었다. 1971년 9월~74년 8월 대통령 제2부속실 행정관으로 육 여사를 수행했던 김두영(84) 전 청와대 비서관은 운명의 그 날을 마치 어제처럼 기억했다. 혹자는 그의 회고를 여사에 대한 ‘선택적 기억’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엔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일관성이 있다. 품격있는 영부인상이 유달리 목마른 시점에 그를 만났다.


약자 챙기기가 일상, 국정 개입 전무

옷 손수 지어입고 딸 예복으로 써

시중 대통령 비판 귀 열고 다 들어

특활비 전용·선물 논란? 상상 못해


영면하시던 날, 대통령과 껴안고 통곡


서울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서 만난 김두영 전 비서관은 저서 『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인간 육영수』를 통해 두 사람의 인간적 면모를 생생히 전했다. 그는 “내가 세상 뜨고 나서 혼백이 있다면 두 분을 가장 먼저 뵙고 싶다”고 했다.


여사 별세 50주년입니다. 그날을 회고해주시죠.

“그날은 비번이라 광복절 29주년 기념식 중계를 집에서 TV로 보는데 갑자기 화면이 꺼져요. ‘무슨 일이 났나’ 하는데 청와대에서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전화가 왔어요. 바로 달려갔더니 간호사가 침대에 누운 육 여사 가슴을 누르는 모습이 보여요. 간호사가 날 보더니 ‘환자 다리 들어 올리세요’ 하는 거예요. 피가 쏟아지니 지혈하려 그런 거죠. 급히 버선 신은 두 발목을 붙잡고 치켜든 채 안고 서서 ‘사모님, 사모님’ 외쳤는데 눈을 감은 채 가래 끓듯 ‘컥컥’ 소리만 내세요. 그때는 다들 ‘사모님’이라 불렀죠. 2~3분 그러고 있는데 의사들이 달려와 수술실로 여사를 모시고 갔어요. 그때 간호사가 여사의 총탄 맞은 이마에서 튀어나온 손톱만 한 뼛조각과 반지를 건네주더군요. 주머니에 넣고 복도에 서 있는데 대통령이 들어 오셨어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원래 검은 얼굴이 핏기가 싹 가시고, 온통 샛노란 거예요. 저녁 7시쯤 여사가 운명해 유해를 청와대에 운구했는데 대통령과 자녀들이 벌써 상복을 입고 서 계시더군요. 눈물을 못 참고 울고 있는데 누가 내 목을 와락 안고 대성통곡을 해요. 돌아보니 대통령이야. 둘이 껴안고 마구 울었어요. 김정렴 비서실장이 옆구리를 치면서 ‘각하 모시고 이러면 어떡해’ 해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통령을 집무실로 모셨어요. 그때 여사 모신 관이 실은 여사 모친 이경영 여사를 위해 준비해둔 관이었죠. 관에 뼛조각을 넣고, 반지는 유족에 돌려드렸어요. 오팔로 기억하는데 비싼 반지는 전혀 아니었죠.”

힘없고 어려운 국민에 유난히 따스했던 영부인으로 기억되는데요.

“그때 세간에 ‘어려운 일 있으면 대통령보다 영부인한테 편지하라’는 소문이 났어요. 대통령에 보낸 편지는 민정수석실에서 스크린하지만, 여사는 직접 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니까요. 박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1961~63년)일 때부터 여사에 편지가 왔을 겁니다. 많을 땐 하루 40통씩 오는데 저와 비서 2명이 편지를 전부 뜯어보고 내용을 발췌한 뒤 원본을 붙여 여사께 보고합니다. ‘무슨 자리에 취직시켜달라’ ‘융자해 달라’는 건 빼고요. 여사가 저녁때 그걸 다 보세요. 아침에 출근하면 ‘○○○ 할머니께 쌀 한 가마 보내주세요’ 같은 지시가 내려와 있어요. 특별한 사안은 직접 인터폰으로 지시하고요. 편지가 적게 오는 때도 있는데 그럼 ‘왜 없지?’ 하세요. 그게 민심을 보여주는 거죠. 세상이 시끄러우면 편지가 늘고요. 서울 서부경찰서 말단 순경의 사연이 기억납니다. 형편이 어려워 단칸방에서 순경과 부인, 시아버지가 함께 자요. 남편이 당직 서는 밤이면 며느리가 잘 곳이 없어 부뚜막에서 쪼그리고 자는 거예요. 영부인이 그 편지 보고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요. ‘방 하나 더 얻게 30만원 보내주세요’라고 하셔서 내가 직접 돈을 전달했죠. 그 때로선 큰돈입니다.”

‘여배우 염문설’도 보고 가능했던 청와대


그가 육영수 여사 지시 집행내역을 쓴 경리 장부. 김현동 기자


생전의 육 여사는 ‘청와대 야당’으로 불렸다는데요.

“대통령 내외가 저녁밥 먹자고 자주 부르셨어요. 찬이라곤 멸치나 말린 꽁치 같은 간소한 식단이에요. 그때 민심을 전하죠. 한번은 ‘(반체제 시인) 김지하씨 두고 말이 많은데, 얘기 들어보면 불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고 했어요. 대통령이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해요. 나랑 함께 여사를 모신 라은실 비서는 대통령에게 ‘모 여배우와 연애하신다는 소문이 났습니다’라고도 했어요. 대통령은 ‘아시아 영화제 참가자들 초청 행사 때 그 배우와 악수한 기억밖에 없는데’ 하셨을 뿐 전혀 화를 내지 않았죠. 또 한 번은 고려대에서 반정부 활동하는 조모 군이 ‘농활 가니 지원해달라’고 편지를 했길래 내가 직접 돈을 주면서 ‘왜 공부 안 하고 데모만 하나. 성과도 없고 시민들만 불편하지 않나. 차라리 농활 가서 농민들에게 박정희 정권 안 되겠으니 심판하라고 하라’고 했어요. 그 친구가 놀라면서 ‘그래도 괜찮습니까?’ 하길래 ‘해라. 청와대 비서관이 그리 말하라고 했다고 하라’고 한 일도 있어요.”

박정희 청와대 비서관이 그런 말들도 할 수 있었습니까.

“박 대통령 내외는 도량 넓으신 분들이고,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을 고마워하세요. 그러니 얼마든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지. 특히 육 여사는 당신을 추켜올리는 말을 하면 바로 ‘마음이 없는 얘기하지 마’라고 하세요. 듣기 싫은 얘기를 듣기 싫어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전 영부인은 비싼 의상으로 특활비 전용 논란에 휘말렸는데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예요. 1973년 1월에 하와이 이민 70주년 행사가 열려 큰 영애(박근혜)가 대통령 특사로 갔는데, 내가 수행했어요. 한복을 5~6벌 갖고 갔는데 전부 육 여사 입던 옷들이라 놀랐어요. 여사가 손수 재봉틀을 돌려 기장을 맞춰놓고 ‘행사 별로 무슨 무슨 옷 입으라’고까지 적어줬어요. 여사 옷은 전부 저렴한 국산 옷감을 손수 디자인해서 가까운 양장점에 맡겨 만든 것들이에요. 양장점이 알려지면 손님들 몰릴까 봐 이름도 안 밝혀요. 백도 전부 국산만 들고 다녀요. 큰돈 들어갈 일 없으니 특활비 논란이 날 수가 있겠어요.”

전 영부인은 해외 출국 행사에서 남편보다 앞서 걸어 구설에 올랐는데요.

“육 여사는 대통령과 함께 한 행사에는 손도 안 들었어요. 동선도 늘 대통령 두세 발짝 뒤죠. 유튜브 동영상 보면 다 나와요. 본인만의 일정엔 경호도 일체 못하게 하고 나만 대동해요. 한번은 북한이 빤히 보이는 강화도에 가시는데, 걱정돼 경호실에 부탁해서 권총을 받아 가려 했어요. 여사에게 보고하자 ‘평소대로 하라’고 해 결국 못 가져갔죠.”

현 영부인은 ‘명품백 선물’ 논란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는데요.

“육 여사는 늘 청와대에서 손님들을 접견하는데, 선물 가져온 이를 본 적이 없어요. 아예 안된다는 걸 다들 알고, 또 만나는 분들이 수준 있는 분들이니 불상사 날 일이 없죠. 양주동·박목월·봉두완씨 등 교수·작가·언론인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자주 들으셨어요. 그분들이 책 들고 오신 건 봤죠.”

영부인들의 인사 개입 논란도 끊이질 않는데요.

“육 여사 추천으로 누군가 장관, 의원이 됐다면 다 알려졌을 텐데, 그런 일 기억나는 게 전혀 없어요. 여사한테 오는 전화는 나나 여비서가 다 받는데 주로 양지회 멤버들과 통화하시고, 친한 여성 성악가 한 분이나 전화가 오지, 장관·의원이나 그들 부인과 통화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육 여사, 대통령 비서실에 전화 딱 2번


요즘은 영부인이 여당 대표에게 문자도 보내는데요.

“육 여사는 약자들 민원을 들어주고 ‘이런 민심이 있다’고 전할 뿐,  정치는 ‘대통령 하실 일’이라며 한치도 개입 안 했어요. 내가 여사를 수행한 3년 동안 그분이 대통령 비서실에 전화하는 거 딱 두 번 봤습니다. 한번은 ‘정종택 비서관(새마을 담당) 연결해 주세요’였는데 새마을 양잠 행사 참석 관련해 질문이 있어서였고요. 또 한 번은 ‘김성진 공보비서 대주세요’ 였어요. 그날 조간에 ‘박 대통령이 ○○ 지역을 시찰했다. 김정렴 비서실장과 박종규 경호실장이 수행했다’는 1단 기사를 보시고 그런 거여요. 여사가 김 비서관에게 ‘대통령 동정 기사 보면 밤낮 김 실장과 박 실장이 수행했다고만 나오는데, 국민들 지겨우시지 않겠나. 앞으로는 수행한 다른 분들 이름도 넣으면 좋겠다’고 해요. 맞는 얘기잖아요. 그 뒤로는 두 실장 대신 ‘○○ 장관이 수행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바뀌더군요.”

전 영부인은 대통령 전용기로 타지마할을 찾았다는 논란이 있습니다.

“당시는 여사는커녕 박 대통령도 전용기가 없어 일반 승객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갔어요. 73년 큰 영애가 하와이 갈 때도 KAL기를 일반인들과 타고 갔죠. 내가 수행했는데 기장이 ‘지금 이 비행기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딸 박근혜 양이 타고 있다’는 방송을 한 게 기억나요. 영부인의 처신은 간단합니다. 육 여사처럼 상식에 맞고,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혜롭게 하면 돼요. 또 여사는 사람을 쓸 때 오랜 기간 됨됨이를 지켜본 뒤 썼기에 측근 논란도 전무했어요. 영부인에게 이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제2부속실 10개 만들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참고문헌>

  1. 강찬호, "쓴소리 반겼던 육영수 여사…정치 얘기엔 “대통령 하실 일”, 중앙일보, 2024.8.7일자. p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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