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특별기고> 연담 이운규 선생의 후천개벽사상과 남학의거운동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3.02.19 03:42


                                            <특별기고> 연담 이운규 선생의 후천개벽사상과 남학의거운동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辛相龜)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는 한국의 신흥종교사와 역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구한말의 도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출생지, 가문, 생몰 연대가 밝혀지지 않아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특히 연담 이은규는 계룡산 줄기의 향적산에서 동학(東學)의 창시자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정역(正易)의 완성자인 일부(一夫) 김항(金恒), 남학(南學)을 중흥시킨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 등을 만나 가르치고 임무를 부여해 구한말 신흥종교 형성과 역학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그는 이제까지 한국사, 한국 철학사, 한국선도사, 한국 역학사에서 중요 인물로 다루어지지 않아 일반인들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필자 역시 잘 모르고 있다가 2008년 국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해 한국선도사 과목의 레포트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요즈음 동학(東學)과 증산교(甑山敎)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후천개벽사상의 원조가 연담 이운규임을 고려해 볼 때에 앞으로 머지않아 연담 이운규 선생 개인은 물론 그가 씨를 뿌린 남학의거운동(南學義擧運動)도 한국사, 한국 종교사, 한국 철학사, 한국선도사에서 중요시 되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 남학의 정의 및 교리

  남학(南學)은 1862년(철종 13)경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가 창시한 한 민족종교이다. 이 교에서는 현대를 선천시대(先天時代)에서 후천시대(後天時代)로 바뀌는 교역기(交易期)라고 규정하고, 후천시대의 운도(運度)를 천명한 ≪정역(正易)≫이라는 역서(易書)를 제시하여, 후천시대는 극락무궁(極樂無窮)한 지상선경(地上仙境)이 이룩된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이 교역기에는 말세적인 재겁(災劫)이 있기 때문에 이 재겁을 없애고 후천선계의 개벽에 참여할 수 있는 인간 개조의 도법으로서 음(吟)·아(哦)·어(唹)·이(咿)·우(吁)의 오음주(五音呪)를 외는 주송수련(呪頌修鍊)을 해야 한다는 오음정의(五音正義)를 주장하였다.오음주송은 이에 음률의 고저·장단·청탁이 있어 서로 조화적으로 자연의 이치에 응하기 때문에 이 영가를 부르면 손발이 저절로 움직여 무도를 하게 된다. 이 영가무도가 극치에 달하면 앉은 채로 몸이 3, 4척이 뛰어오르고 여러 가지 방언(方言), 이보(耳報:귀신이 와서 귀에 대고 일러주는 말로 점을 치는 것), 토설(吐說:숨겼던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서 말함)이라고 불리는 신비현상을 불러 일으키며, 질병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교리로는 유·불·선 3교가 융섭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실제로 영가무도교에서는 정(精)·기(氣)·신(神)의 조화작용이 있다고 믿는다. 정의 조화에 의해 만리(萬理)를 관통하는 것은 유교의 진리라 하고, 신의 조화에 의해 돈오(頓悟)하는 것은 불교의 진리라고 하며, 기의 조화에 의해 수련되는 것은 선교의 진리라고 한다. 정·기·신의 조화는 모든 심법(心法)에 의한 것이므로 남학은 유교의 존심양성(存心養性)과 불교의 명심견성(明心見性)과 선교의 수심연성(修心鍊性)이 아울러 이룩되는 유·불·선 3교 합일의 도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이운규의 제자인 일부(一夫) 김항(金恒) · 이용래(李龍來) ·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 등에 의해 교단이 성립될 때, 김항은 유교적인 방향에서 충청남도 연산과 계룡산 일대를 포교하고, 김치인은 불교적인 방향에서 전라북도 운주(雲州)와 진안 운장산(雲長山) 일대에 포교하게 되었다.

이운규가 자신을 찾아와 수학하는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어떠한 교명(敎名)을 제시한 바도 없고, 교단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제자들에 의하여 교단이 분립 형성될 때, 무극대도(無極大道)·대종교(大宗敎)·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오방불교(五方佛敎)·광화교(光華敎) 등의 교명이 붙여졌다.

   이 교단이 동학(東學)의 발생과 때를 같이하고 교리가 거의 같으면서도 방법이 다르다고 보는 사람들에 의해 동학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남학(南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남학의 일부 교단에서는 동학의 갑오의거가 있을 때 이에 준하는 남학의거운동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일까지 있다.

  이운규(李雲圭)는 1804년(순조 4)에 충남 천안시 목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수증(守曾), 호는 연담(蓮潭). 운규(雲圭)는 별칭이다. 세종의 열여덟째 아들인 담양군(潭陽君)의 13대손으로, 흥선군 이하응(李昰應)과 친밀하게 지냈으며 조대비(趙大妃)의 친정과 인척관계가 있었다.

  이운규는 일찍이 이서구(李書九, 1754~1825)의 문인으로 들어갔다. 전주이씨 덕흥 대원군의 후손인 이서구는 시에 능해 이덕무·유득공·박제가와 함께 4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고, 재야의 학문인 천문, 지리에도 능통한 당대의 이인(異人)이었다. 그리고 이서구는 서화담-이토정-이서구-이운규-김일부로 이어지는 조선조 유가(儒家) 도맥(道脈)의 반열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이운규는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감사와 참판을 지냈다. 그는 유교경전과 시문은 물론이고 도가서(道家書) 등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탐독하고 천문·역학·의복(醫卜)·술수(術數)까지 연구하였다. 특히 천지의 운도와 인세(人世)의 역사적 쇠왕(衰旺)과 교운(敎運)을 살피기 위한 역학연구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선후천 운도가 바뀌는 교역(交易)의 이(理)를 깨닫고 이에 따라 선천 역리를 밝힌 ≪주역≫의 원리가 후천 역리로 바뀐 ≪정역≫의 이치를 구명하기에 이르렀다. 선천 운수는 해[歲]의 운회(運回)가 365일에 4분의 1이라는 윤(閏)이 있었지만, ≪정역≫의 운수는 360일 정각이 되니 윤달이 없는 운회라 한다. 그러므로 후천에는 사계(四季)·주야(晝夜)·한서(寒暑)의 차이가 없게 되고 인간사회에도 빈부·귀천·수요의 구별이 없게 된다. 사람의 형상도 달라져서 1만 8,000세까지 장수할 수 있고, 사람은 신명(神明)과 동화되어 조화를 임의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상에는 죄고(罪苦)가 없는 지상천국을 이룩하게 된다. 이운규의 이러한 사상은 당시 국가의 운명, 국민의 생활, 윤리적 교육, 민족의 종교가 바로 서지 못하고 극도로 쇠퇴하는 운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이은규(李雲圭)는 서울에서 국운이 쇠약하여짐을 느끼고 서울을 떠나 낙향해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띠울마을)에 은거하고 있을 때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일부(一夫) 김항(金恒),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 등을 가르쳤다. 1861년(철종 12)에 최제우ㆍ김광화ㆍ김항을 차례로 불러, 최제우에게는 선도(仙道)의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여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라는 3ㆍ7자 주문을 독송하며 심신을 연마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김광화에게는 불교의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여 “남문(南門) 열고 바라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 밝아온다.”라는 주문을 주면서 수련을 하라고 하였다. 또한 김항에게는 유교의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여 “관담(觀淡)은 막여수(莫如水)요, 호덕(好德)은 의행인(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라는 시를 남겨주고 표연히 띠울마을을 떠나 무주 용담(龍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은거하다가 다시 본고향인 천안 목천(木川)으로 갔다고 하나 그 뒤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후 최제우는 동학을 일으켰고, 김광화는 남학(南學)을 창시하였으며, 김항은 19년 동안 ‘영동천심월’의 뜻을 알기 위하여 정진하다가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정역(正易)>의 체계를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따라서, 동학과 남학, 그리고 <정역>은 모두 그의 사상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나 이 주장은 대개 김항의 계통에서 제시하고 있다. 세 제자 중 김항만이 그와 사돈관계를 맺은 것을 보아도 양자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2. 남학의 연원 및 변천 과정

  1898년에 김항이 타계하자 10대 제자 중 한 명인 하상역(河相易)이 2대 교주가 되었다. 그는 김항을 상제(上帝)로 신격화하여 신앙대상으로 삼고, 윷판의 29점 배열이 곧 〈정역〉의 기본원리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를 반대하는 제자들이 "공맹의 도를 더 진전시킨 정역을 사도(邪道)로 타락시킨다"고 공박한 것이다. 이로써 분립된 양 계파는 이후로도 전승을 달리하였으며, 이중 후자의 입장을 견지한 일파가 김항의 직계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근래 정경학회(正經學會)를 구성하여 정경(곧 정역)을 학리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편 광화 김치인은 이운규의 선후천교역운도와 오음주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보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교단을 창립하였다. 그는 전북 용담 대불리에서 이운규를 1세 교주, 이운규의 장남 용래를 2세 교주, 차남 용신을 3세 교주, 김치인 자신을 4세 교주로 하는 오방불교 또는 광화교라는 교단을 형성하였다. 오방불교에서는 미륵하생신앙의 영향으로 후천개벽을 용화세계의 도래로 보고, 김치인이 바로 미륵불의 강림이라고 믿었다. 또 그는 유교의 인의도덕과 불교의 자비선행 및 선도의 주축수련(呪祝修練)의 병행으로 새로운 후천세계, 즉 용화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일부계보다 훨씬 많은 신도를 끌어모았다. 그는 자신의 교단을 남학이라고도 불렀는데,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5만 명에 달하는 남학군을 조직하고 남학운동을 하려 했으나 사전에 관군의 습격을 받아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을 비롯한 간부들이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광화 김치인 사후, 광화계 신종교 교단은 광화교·광화연합회·금강불교·칠성교 등으로 분열되어 전라북도 일원에서 포교되고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과 8·15해방 후의 격변 속에서 교세가 급격히 위축 또는 소멸되어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참고 문헌>

  1. 류남상,「정역사상(正易思想)의 연구」,『한국종교』 제1집,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71.

  2. 이정호,『정역(正易)연구』,국제대학 인문사회과학연구소, 1976.

  3. 이강오,「구한말 남학의 발생과 그 성격에 관하여」, 『전라문화연구』 창간호, 전북향 토문화연구회, 1979.

  4. “이운규(李雲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5. 김홍철,『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필자 약력>

   .1950년 6월 26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부친 신종순(辛鍾淳), 모친 유옥임(兪玉任)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A study of korean inflation」(1980.2)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A study of shamanic culture in Taean)」(2011.8)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조치원중, 조치원여고, 삽교중, 한내여중, 천안북중, 천안여중, 태안중, 천안중 등 충남의 중등학교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3.15),『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5권.

  .주요 논문 :「태안지역 무속인들의 종이오리기 공예에 대한 일고찰」(2010),「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2012),「2020년 노벪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의 생애와 문학세계」(2020) 등 125편

  .주요 발굴 : 민촌 이기영의 천안 중앙시장 3·3항일독립만세운동 기록(2006)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2007)

  .수상 실적 : 예산군수 감사장, 대천시장상(2회), 천안시장상(2회),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문화원연합회장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동아일보·중앙일보·조선일보·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서울일보·신아일보·문화일보·전국매일신문·시민신문·천지일보 등 중앙 일간지, 대전일보·충청일보·충청투데이·중도일보·동양일보·금강일보·중부매일·충남일보·중앙매일·충청타임즈·충청매일·대전투데이·충청신문·충북일보·우리일보·시대일보·중부일보·영남일보 등 지방 일간지, 충남시사신문·천안일보·충남신문·천안투데이·아산투데이·아산시사신문·예산신문·태안신문·태안미래신문·홍성신문·보령신문·내포시대·진천신문·증평신문·옥천신문 등 주간신문, 아산톱뉴스·천안일보·디티뉴스·대전뉴스·충청뉴스·충청뉴스인·시티저널·충북인뉴스·굿모닝충청·대전문화신문·예산뉴스 무한정보·백제뉴스·괴산타임즈·코리안스프릿 등 인터넷신문 등에 수백 편의 칼럼 기고.

  .30년 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환경운동 전개, KBS 중앙방송국 라디오 <논술 광풍>프로 출연, STB 상생방송 <홍범도 장군> 프로 출연, KBS 대전방송국·MBC 대전방송국·CJB 청주방송국 라디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발굴> 프로 출연

  .대전 <시도(詩圖)> 동인,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충남민주시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사회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국민윤리교육회 회원, 천안향토사 연구위원,『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통합논술 전문가, 평화대사, (사)대한사랑 자문위원, 천손민족중앙회본부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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