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들을 이끌고 군자금을 모으거나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의병장들이 역사 속 기록으로 새롭게 조명됐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조한필)은 지난해 다른 의병의 재판기록, 의병 관련 자료 등을 활용해 서산·천안에서 서훈받지 못한 의병 다수를 찾아냈다. 서산 9명, 천안 7명 등 총 16명이 미서훈 의병으로 공적조서 대상이다.

   현재 국가보훈처 서훈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의병 16명 중 대다수가 의병장들로 이들은 부하 20-30명씩 이끌며, 군자금을 모으거나 일본 헌병대 등을 습격했다. 1907년 한말 군대 해산으로 촉발된 정미의병은 1909년 말까지 계속됐다.

   이관도 부대는 청양·홍성·예산 일대를 돌며 군자금을 모았다. 총·칼로 무장한 이들은 주재소 순사들과의 전투도 불사했다. 홍주경찰서와 헌병분견소는 '변장순사'까지 투입해 이들 검거에 주력했으나 보령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는 등 맹활약을 했다. 의병장 이관도는 이번에 서훈 신청 대상이 되었으나 부하 3명은 2016년 이미 애국장을 받았다.

1909년 6월 충남관찰사가 박제순 내부대신에게 보고한 이관도 관련 내용 문건 사진=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신기석은 1908년 10월 부대원 30명을 배를 태우고 서산 독곳에서 태안으로 도주했다. 면천의 헌병분견소는 추적에 실패한 정황을 조선통감부에 보고했다. 신기석 부대는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소난지도 등 서산· 당진의 섬과 내륙을 오가며 의병 활동을 펼쳤다.

   최종성은 당진 농민 출신으로 서산·해미·면천 등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9년 조선통감부 자료에 따르면 부하는 약 30명이었다.

   천안 목천의 박관실은 1907년부터 2년간 목천·진천·청주·연기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일본군 문서인 '폭도수괴 명부'에 따르면 그는 육군 참위 출신으로 부하는 16명이었다. 오래전 박관실 부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 의병 활동을 했다는 공로로 3명이 애국장을 받았으나 정작 그는 제외됐다.

   천안 원서면의 김무진은 1908년 12월 대전지검 공주지청으로부터 내란·강도 혐의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김씨와 같은 죄명으로 같은 판결 기관에서 같은 날짜에 판결 받은 의병이 확인되고,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판단, 김무진이 의병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2020년부터 서훈 받지 못한 일명 '숨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서훈받는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예산군은 지난해 기초지자체로서 가장 많은 38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해 국가보훈처 표창까지 받았다. 독립유공자 수는 7월 현재 충남도가 1608명으로, 경북(2394명)에 이어 두 번째다.

   충남도 독립유공자는 현재 700여명이 서훈 심사 중에 있어 조만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전망하고 있다.

   조한필 원장은 "2021년 발굴한 천안과 서산출신의 의병 이외에도 예산 출신 의병 2명, 부여 출신 의병 21명, 서천 출신 의병 1명 등 많은 의병들의 활동상을 확인했다"며 "올해 진행하고 있는 홍성과 아산에서도 의병뿐 아니라 많은 미서훈 독립운동가들이 발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1. 박계교, "숨은 독립운동가 충남 16명 발굴, 서산 9명 천안 7명", 대전일보, 2022.8.12일자.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