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김부겸 국무총리, 제74주년 제주4.3추념식 추념사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2.04.03 12:23

           김부겸 국무총리, 제74주년 제주4.3추념식 추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주4·3사건 유가족과 생존 희생자, 그리고 제주도민 여러분, 이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일어난, 우리 민족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비극을 뒤로 한 채, 일흔네 번째 봄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억울하게 숨져간 4·3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 제주4·3평화공원에 모였습니다.

깊은 한을 품고 돌아가신,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몸과 마음의 상처를 참고 견디면서도 4·3이 잊혀지지 않도록 역사의 증인이 되어주신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머리 숙여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4년 전, 이 찬란한 남녘의 유채꽃은 선한 민간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냉전과 민족 분단의 혼란 속에서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폭도’, ‘빨갱이’로 낙인찍혀 반세기 가까이 숨죽여 살아야 했습니다.

떨어지는 동백꽃에서 희생자들이 흘린 붉은 피가 보이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그날의 참혹한 절규와 비명이 들려와도, 작은 흐느낌조차 속으로 속으로 욱여넣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74년 전 제주의 잔인했던 봄은 푸른 바다 아래로 영원히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그 깊은 설움과 한을 간직한 남도의 봄은 쉬이 되살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바라는 끈질긴 외침을 통해서 제주 4·3은 가쁜 숨비소리를 내며 마침내 역사의 심연에서 그 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4·3의 숨비소리가 역사의 숨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민들의 단단한 용기, 그리고 처절한 분투 때문이었습니다.

남도의 외딴섬에서 울려 퍼진 제주도민의 목소리에 진실된 역사를 지키고자 하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응답한 것입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지난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었고, 74년 전, 봄날의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오명을 쓴 채 살아야 했던 1만4,577명의 희생자분들과 8만4,506분의 유족들께서 마침내 명예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에 진행된 ‘희생자·유족 7차 신고사업’에서는 44분이 희생자로, 4,054분이 유족으로 새로이 인정받으셨습니다.

내년 1월부터 ‘8차 신고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다음 정부에 그 내용을 잘 전달하겠습니다.

아직도 희생자와 유족 신고를 망설이는 분이 계신다면, 주저하지 말고 정부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또한, 오는 12일부터는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서 4·3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가능해집니다.

억울하게 희생되신 그 귀한 목숨과 긴 세월을 갚기에는 억만금의 보상금도 부족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눈보라 속에서 엄마를 찾는 젖먹이의 울음소리, 하루아침에 엄마 아빠를 잃은 수없이 많은 어린 아이들, 어디론가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젊은이들의 얼굴, 생때같은 자식의 무덤조차 찾지 못한 그 부모님들의 한을, 어떤 보상으로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보상을 통해서 희생자의 명예가 회복되고 유가족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보상금 지급은 결코 희생자와 유가족 지원의 끝이 아닙니다.

이분들이 국가폭력에 빼앗긴 삶과 세월에 충분한 위로가 될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주는 4·3이 남긴 그 처절한 아픔을 딛고,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해와 상생을 일구어냈습니다.

‘제주4·3희생자 유족회’와 ‘제주도 재향경우회’가 지난 2013년부터 매년, 희생자의 넋을 함께 기리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용기이자, 인류사를 통틀어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대한 용서와 화해였습니다.

‘평화의섬’ 제주의 길을 열어주신 그 숭고한 용기에 머리 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이 위대한 공감과 이해, 화해를 이뤄낸 ‘평화와 상생의 정신’은 지금 이념으로, 지역으로, 성별로, 계층으로 쪼개져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공동체가 반드시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민족사의 유산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제주도민들께서는 그 참혹한 역사를 딛고, 6.25 전쟁은 물론이요,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의 모든 역사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안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국가폭력에 무너졌던 희생자와 유족, 후손들의 삶이 이제 진정한 안녕을 찾았는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보면 살 수 있다)”는 말로 아직도 슬픔과 아픔을 참고만 계시는 분은 없는지,

우리 공동체가 함께 끝까지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의 삶에서 4·3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입니다.

어린 학생 시절에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살아오신 90대 할아버지, 형무소에 끌려가 행방불명되신 아버지의 호적 대신에 작은아버지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칠십 평생을 ‘아버지의 조카’로 살고 계신 할머니, 경찰 시험에 어렵게 합격했지만 합격을 취소당한 생존 희생자, 연좌제의 피해자가 되어 군인의 꿈을 포기했던 희생자 유가족, 할아버지의 기일을 알 수 없어서 생신에 제사를 지내는 손주까지, 아직도 수만 명 제주도민의 삶에는 4·3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하나의 진실이라도 더 발견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진실의 역사’ 위에서만 한 개인의 삶은 물론, 우리 공동체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2003년 진상조사 때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 올해부터 추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이 역사적 책무를 결코 외면하거나 가벼이 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제주도민 여러분!

며칠 전, 제주4·3사건으로 부당한 판결을 받았던 마흔 분이 ‘4·3중앙위원회’가 권고한 직권재심을 통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정말 많이 늦었지만, 오랜 세월 응어리진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올해는 제주 ‘세계평화의 섬’ 17주년을 맞아 5월에 기념식이, 9월에는 ‘제주포럼’이 개최될 것입니다.

이 행사들을 통해서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우리 국민과 세계인의 가슴 속에 영원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제주도민들이 일궈내신 화해와 상생의 정신, 그리고 세월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을 정의를, 우리 국민들과 제주도민들께서 두 손을 단단히 맞잡고 세워주십시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주4·3사건의 모든 희생자와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억울하게 숨져간 제주4·3의 영령들이시여, 편히 잠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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