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어 교수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이고 일본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2년 전에는 일본정부 훈장인 ‘욱일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일본 사람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본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일본의 시대착오적 제국주의 야망에 의한 후안무치한 작태에 대해 세계가 경악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우리를 더욱더 분노케 하는 것은 “위안부는 매춘부와 다를 게 없다”라는 램지어 교수의 망언을 지지하고 그 망언을 비판하는 해외 교수들에게 압박 메일을 보내고 있는 자들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미디어 워치 편집장이라는 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강남 성매매 여성과 다를 바 없고 위안부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으며 일본 우익 주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라고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또한 램지어 교수를 지지하는 데 서명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는 설 연휴 기간에도 유튜브를 통해 “위안부가 선수금을 먼저 받고 앞으로 일하면서 선수금을 까나가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성노예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함축을 하고 있다”라고 역사적 사실과 다른 반인륜적인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오늘날 몰지각한 자들은 언론의 자유라는 이유로 왜곡된 역사적 내용과 날조된 궤변으로 일반 사람들의 역사적 인식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으며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지난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만큼 지난 문제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1945년 7월 24일 저녁 9시 10분 해방이 한 달도 남지 않았던 서울의 부민관에서 거대한 폭발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날 박춘금을 비롯한 국내 친알파는 물론 아시아 각국의 친일파 거물들이 모여 일제의 태평양 전쟁에 조선 청년들의 참여를 선동하기 위한 ‘아세아 민족 분격대회’를 열고 있었다.

    유만수, 강윤국, 조문기 세 청년은 일본 강관주식회사에서 조선인 노동자 차별에 항의하는 파업 투쟁을 일으킨 후 귀국하여 ‘대한애국청년단’을 결성하고 총독부 고위관료와 친일 거두 암살을 결행한 일제 강점기 마지막 항일 의열 투쟁인 ‘부민관 폭파의거’였다.조문기 선생은 해방 전에는 조국의 독립을, 해방 후에는 친일청산과 통일을 위해 투신했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서다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러야만 했으며, 1959년 어처구니없게도 ‘대통령 암살 및 정부 전복 음모자’의 주동자로 몰려 온간 고초를 겪고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다.

   하지만 “해방은 되었어도 친일파들의 세상은 진정한 해방과 독립이 아니다”라는 불변의 신념으로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올리기를 거부했다. 1999년 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친일청산이 오늘의 독립운동이다”라면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친일인명사전 발간 6개월 전 2008년 2월 5일 별세하여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선생이 그토록 염원했던 친일파 척결과 친일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비정상의 시대 속에서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아 친일 인명사전 기준으로 서울 현충원에 37명, 대전 현충원에 29명 등 모두 66명이나 된다. 이 엄청난 모순의 근원은 해방공간에서 반민특위의 좌절로 친일파들의 세상에서 민족 정체성이 훼손되고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한 데에 있다.

    오히려 해방 후 70여 년 동안 친일민족반역자들은 민족 분단의 불행을 이용해 독립지사들과 그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권력을 독점해 사회 정의를 무너뜨렸다. 더욱이 친일 반민족 세력들은 그들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 언론을 통해 보수라는 가면을 쓰고 반역사적인 왜곡된 사실로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다.

    조문기 선생의 묘비에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게는 세 가지 죄가 있다. 통일을 위해 목숨을 걸지 못한 것이 첫 번째요,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런데도 대접받고 있는 것이 세 번째다'라고 적혀있는 말 속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1. 박해룡, "올바른 역사의 실마리", 금강일보, 2021.2.24일자.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