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사진) 선생이 이렇게 친필 글씨를 써넣은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2일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비롯해 대한제국 시대 고종의 외교 고문을 맡았던 오웬 니커슨 데니의 태극기와 1919년 제작된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3점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모이원고’ ‘조선말 큰사전원고’에 이은 근현대유산 보물이다.
‘진관사 태극기’ 일장기 위에 태극 그려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이던 김구 선생이 직접 글귀를 쓴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 후손이 1985년 ‘안창호 유품’으로 독립기념관에 기증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김구 선생의 친필로 먹글씨 134자를 쓰고, 마지막에 날짜·서명과 함께 ‘김구’라고 적힌 사각 도장을 찍었다. 김구 선생은 당시 중국 충칭에서 활동하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샤를 메우스)에게 ‘미국에 가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이 글을 보여 달라’며 전달했고, 메우스 신부는 미국으로 가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달했다.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가 남긴 ‘데니 태극기’는 가로 262㎝, 세로 182.5㎝의 대형 태극기로, 현재 남은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됐다. 바탕 천으로 쓴 광목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태극 문양, 푸른색 4괘를 재봉틀로 박아 넣었다. 재봉틀을 쓴 점이 당시 서양의 국기 제작 방식과 비슷해 19세기 말 근대 문물이 들어오던 조선의 정세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미국 외교관 데니는 중국 주재 영사로 있던 중 1886년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담당 고문으로 부임, 4년 동안 외교·법률·경제 분야 정책 수립을 도왔다. 1888년 ‘서구 국제법에 따르면 조선은 독립국이며, 청의 내정간섭은 부정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 『중국과 한국(China and Corea)』을 쓰기도 했다. 데니는 중국의 미움을 사 1891년 1월 한국을 떠나는데, 이때 ‘데니 태극기’를 미국으로 가져간다. 1900년 데니 사후 약 80년간 데니 가문에서 보관하다 1981년 그 후손이 한국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데니 태극기’는 기증 당시에도 부식 등 손상이 거의 없이 상태가 좋았다.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2018년 이후 매년 삼일절·광복절 등에 일반에게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도 광복절을 맞아 13~23일 상설전시실 ‘대한제국실’에서 ‘데니 태극기’를 특별공개한다.
2009년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는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으로 덧칠했다. 왼쪽 윗부분은 불에 타 손상됐고, 작게 뚫린 구멍들도 있어 만세운동 현장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진관사 태극기’는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독립신문·조선독립신문 등 신문류를 태극기로 감싼 형태로 발견됐다.
문화재청 박수희 연구관은 “불교계 독립운동을 총괄한 것으로 전해지는 진관사 승려 백초월, 혹은 주변인이 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에서 처음 발견된 일제 강점기 태극기로, 절이 독립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한 사실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30일의 예고기간 동안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 태극기 3점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