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상해임시정부 법무총장을 지낸 예관 신규식 선생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5.29 20:22

                                                              상해임시정부 법무총장을 지낸 예관 신규식 선생

    32세에 망명하여 42세를 일기로 눈을 감을 때까지 한번도 고국땅을 밟지 못한 채 이역에서 순국한 예관 신규식 선생의 발자취를 내년이면 그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지금, 찬찬히 되새겨 거닐어보려 한다. [편집자말]
 
 임시정부 법무총장 예관 신규식 선생
 임시정부 법무총장 예관 신규식 선생


           

    내년(2022년)은 예관(睨觀) 신규식(申圭植, 1880~1922) 선생 서거 100주년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성좌 중에 선구적인 독특한 분인데도 일반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金奎植) 선생과 혼동하기도 하고, 일반에 흔히 쓰이지 않는 한자인 아호 예관(睨觀)의 '예(睨)' 자에서부터 관련된 책장을 덮기도 한다.

    신규식 선생의 생애를 압축하는 진면목은 이 아호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눈 흘겨 본다"는 뜻의 '예관' 이라 호를 짓게된 사연은 이렇다.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 시위대 시절 을사늑약이 강제되었다. 선생은 의병을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자살을 기도했다가 생명을 건졌으나 오른쪽 눈의 시신경이 마비되고 말았다. 이후 항일구국전선에 나서면서 "애꾸눈으로 왜놈을 흘겨본다"는 의지를 담아 '예관'이라 호를 지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치의 뒤틀림도 없는 항일투쟁으로 42년의 짧은 삶을 바쳤다.

     꽃이나 과일을 즐기면서도 이를 심고 가꾼 사람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일반인들이야 바쁜 일상에 그럴 겨를이 없을 것이라 탓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ㆍ연구자들의 경우는 달라야 할 것이다. 

     베를린대학 총장 등을 지낸 독일의 피히테(1762~1814)는 나폴레옹의 침략에 직면하여, 자국민의 민족의식을 환기시키고자「독일국민에게 고함」이란 유명한 글을 짓고 연설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예관 선생이 나라를 빼앗기고 망명지에서 지은『한국혼(韓國魂)』은 해방 이래 학생들에게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나라 망한 이듬해(1911년) 31세가 된 예관은 다수의 독립 운동가들이 택하는 만주나 연해주가 아닌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터를 닦으면서 1912년부터『한국혼』의 집필을 시작한다. 첫 대목부터가 나라 잃은 동포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백두산의 쓸쓸한 바람에 하늘도 땅도 시름에 젖고 푸른 파도가 굽이치니 거북과 용이 일어나서 춤을 춘다. 어둡고 긴 밤은 언제 그치려나, 사나운 비바람만 휘몰아친다. 5천 년 역사를 가진 조국은 짓밟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3천만 백성은 떨어져 노예가 되었으니, 아아! 슬프다. 우리나라는 망했도다. 우리들은 기어이 망국의 백성이 되고 말 것인가?

     개탄은 누구나 하기 쉽다. 예관은 망국의 원인과 국치의 사유 그리고 국권회복의 방략을 찾고자 하여 이 책을 지었다. 

     마음이 죽어 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나니 우리나라의 망함은 백성들의 마음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제 망국의 백성이 되어 갖은 슬픔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어리석고 무지하여 깨닫지 못함은, 죽은 뒤에 한 번 더 죽는 것과 같다. 아아, 우리나라는 끝내 망하고 말았구나. 

     우리의 마음이 아직 죽어 버리지 않았다면 비록 지도가 그 빛을 달리 하고 역사가 그 이름을 바꾸어 우리 대한이 비록 망했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각자 하나의 대한이 있는 것이니 우리의 마음은, 곧 대한의 혼은 아직도 돌아올 날이 있으리라. 힘쓸 지어다, 동포여! 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스럽게 여겨 쓰러지지 않도록 할 것이며 먼저 개인의 마음을 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예관 선생의 행적은 대단히 선구적이었다. 1911년에 발발한 중국 신해혁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한국독립운동과 연결시키려면 혁명의 발상지인 상하이에 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1919년 3ㆍ1혁명 시기에 해외거주 동포의 수는 만주(간도)에 약 60만 명, 노령 연해주에 20만 명, 미국과 하와이에 약 6천 명, 상하이에 400여 명 정도였다. 
  
     예관이 망명지로 택했던 1911년 경에는 상하이 거류 동포는 이보다도 더 적었을 것이다. 만주와 연해주는 동포가 많고 고국과 가까운 이점이 있었으나 일제의 영향권이고, 미국ㆍ하와이는 안전하지만 고국과 너무 멀어 독립전쟁을 일으키기에는 불리했다. 상하이는 두 지역의 중간지대인데다 조계지역이고 국제도시여서 국제여론을 일으키기 쉽겠다는 판단이었다. 

     예관의 선구적인 역할은 신해혁명을 주도한 손문의 '중국동맹회'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가입하여 무창혁명(武昌革命)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중국혁명세력과 손을 잡게 되었다.

     그는 국치 이후 첫 해외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결성, 신한혁명당조직, 「대동단결선언」주도, 항일잡지 『진단주보』발행, 「무오독립선언」에 참여한 데 이어 1919년 3월 여운형ㆍ선우혁 등과 상하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설치함으로써 임시정부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마침내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예관 선생은 임시의정원 부의장과 법무총장, 국무총리 대리에 취임하여 혼란기 임시정부를 수습하고 광동특사로 손문 총통과 만나 외교문서를 증정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호법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식 승인되었다. 

     임시정부 수립의 산파역을 해낸 예관 선생은 이승만의 국정농단을 둘러싸고 임정이 혼란 상태에 빠져들자 심장병과 신경쇠약으로 병석에 누워 25일 동안 불식(不食)ㆍ불어(不語)ㆍ불약(不樂)으로 시종하다가가 "정부, 정부"를 부르짖으며 숨을 거두었다.

     32세에 망명하여 42세를 일기로 눈을 감을 때까지 한번도 고국땅을 밟지 못한 채 이역에서 순국하였다. 동료들이 더 이상 분열하지 말고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합하라는 유지였다.  
                                                                                           <참고문헌>

    1. 김삼웅, "항일독립투쟁의 선구적인 인물 예관 신규식 선생", 오마이뉴스, 2021.5.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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