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자율주행 연구의 선구자인 한민홍 박사 이야기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6.18 02:37

                                                     자율주행 연구의 선구자인 한민홍 박사 이야기                              


과학전문언론 대덕넷(HelloDD.com)이 야성과학자 기획 시리즈를 보도합니다. 환경과 조건에 굴하지 않고 수십 년간 연구에 몰입하는 분들을 우리는 '야성' 과학자라 칭합니다. 안 되는 이유보단 되는 이유를 찾고, 보이는 길보단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시는 분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한 우물을 파는 과학자들이 있기에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미래도 현실이 됩니다. 연구자의 땀 속에 숨겨진 연구 정신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편지]

한민홍 전 고려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20여 년 전 자율주행차를 자체 개발했다. 그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서울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생존을 위해 학업과 장사를 병행했다고 한다. 넥타이, 양말, 옷을 팔았지만, 서른 중후반부터 학업에 전념했다. 그는 조지아 공대에서 산업공학 박사를 받으며 본격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미국 자율주행 잠수정 개발에 참여했고, 1988년 한국으로 들어와 자율주행 연구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1993년 도심주행을 시작으로 1995년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을 실현한 바 있다. [사진=김인한 기자]


    지난달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 '첨단차' 사무실 앞. 빨간 경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차량 앞쪽에 부착된 센서, 카메라 8대가 붙어 있었다. 한민홍 전 고려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20여 년 전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차였다. 그는 여전히 이 자동차를 출퇴근에 활용하고 있다.

    한 교수는 자율주행 연구 분야 선구자다. 그는 1980년대 미국 텍사스 A&M 주립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자율주행 잠수정 개발에 참여하며 인공지능(AI)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국방 기업과 협업하며 미국 시민권도 얻었지만, 돌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86년 설립된 POSTECH(포항공과대학교)에서 국가를 위해 연구해달라며 한 교수를 영입한 배경 때문이었다. 한 교수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POSTECH에서 연구를 이어오다가 1991년 고려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율주행 분야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93년 도심 자율주행, 1995년 빗길 고속도로 100km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야간 주행까지 성공한 것이다.

    2010년 후반에 들어서야 테슬라, 알파벳 등에서 자율주행을 본격 실현한 점을 보면 무려 25년 앞서 있던 기술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선도 연구에 대한 지원은 열악했고, '기술을 사 오면 된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자율주행 전문기업 첨단차를 세우며 고군분투했지만, 기술 개발은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계에 주저앉지 않고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율주행 연구를 지속했다. 그 결과 전자 지도(네비게이션), 졸음운전 방지용 안경, 드론 등을 개발해왔다. 한 교수는 현재 80세인데도 여전히 현역이다. 자율주행 기업의 자문 역할을 하며 기술 상용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컴퓨터 코딩부터 자율주행에 필요한 연구를 직접한다. 나이가 들어 청각이 나빠진 걸 제외하면 논리, 추론 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80세까지 현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하고 싶은 연구와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접점을 찾은 것이라고도 했다. 시대를 앞서 갔던 한민홍 전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30년 전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인 이후 정부 무관심으로 지원을 못 받으셨다고 했는데, 민간 투자는 생각하지 않으셨나.

    투자 제안은 무수히 많았다. 심지어 백지수표를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다 돌려줬다. 증권회사, 기업 관계자들 여럿 찾아왔다. 당시만 해도 자율주행 기술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봤다. 괜히 남의 돈을 가져다가 눈물짓게 하기 싫어서 거절했다. 돈이 정말 많아서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거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만, 누군가 일생 동안 모은 돈을 받아 투자받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멀리 보는 무인자동차 연구는 필요하지만, 지금도 현실성이 부족하다. 너무 포장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사람이 관여하지 않는 분야에서 상용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항만·물류 자동화, 농촌 기계화, 3D 업종 자동화 분야가 그렇다. 농촌 일손을 해결할 무인 트랙터, 마을 셔틀버스는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청소, 쓰레기 수거 자동차도 빨리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돼야 한다.

    Q. 자율주행 연구만 40년 하셨는데, 왜 이 연구 주제를 택하셨나.

   재밌지 않나. 기계가 사람이 명령하는 대로 간다는 건 재미난 일이다. 아직도 큰 트럭이 내가 지시한 대로 갈 때는 짜릿하다. 대학이니깐 가능한 연구였고 기업이면 못했다.

    그리고 대학원생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의미도 있었다. 남이 하지 않는 연구라는 자부심. 당시만 해도 저희 연구실에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섰다. 항상 연구원들에게 했던 말은 남이 해놓은 일을 흉내 내지 말라고 했다. 연구에 큰 철학은 없지만, 즐겁게 연구하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네비게이션과 자율주행 기술을 먼저 개발할 수 있었다.

   Q. 1990년대 초중반 연구 수준과 지금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자율주행 분야만 얘기하면, 정부로부터 받는 연구개발(R&D) 자금 참 쉬운 돈이다. 자율주행 분야만 수십 년간 몇 조원 들어갔다.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나눠줬다. 그래서 제자리걸음이다. 담당 공무원은 예산 배분하면 끝이다. 성과 추적을 안 한다. 이렇게 쉬운 돈이 어딨나.

    그래서 연구 책임제로 가야 한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 수준을 파악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연구비를 줘야 한다. 연구 과제 줄 때는 성과 내면 보너스, 성과 못 내면 게워내야 한다. 연구자도 자신 없으면 연구하지 말아야 한다. 연구비 받을 사람이 없으면 예산은 이월해야 한다고 본다. 연구비에 대한 책임은 어떤 식으로 져야 한다.

    Q. 연구에 아쉬웠던 점이 많으셨던 것 같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우리가 모르는 기술은 없다. 기술 강국하고 뭐가 다르냐, 기술 손질이 더 됐느냐 안 됐느냐 차이다. 기술은 평준화 됐다. 컴퓨터, 라이다, 카메라, 센서 전부 다 있다. 못 할 이유가 없다. 인재 똑똑하고 예산도 충분하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 기술 재고조사다. 그런데 그걸 안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모른다. 조금씩 돈 줄게 아니라 각 분야 일인자가 누군지 파악하고 예산을 줘야 한다. 그리고 일인자를 아우를 오케스트라 지휘자 한 명이 필요하다. 지금은 기술, 예산도 있지만 지휘자도 없고 모티베이션(동기)이 없다.

    Q. 연구 책임제, 기술 재고조사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대한민국은 재능 있는 민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걸 폄하한다. 우리가 가진 기술도 충분한데 존중을 안 한다. 자율주행 분야를 봐라. 기업체도 해외 기술 가져다 쓰지 않나. 우리나라에 자율주행 바람이 분 것도 외국에서 우리 연구진이 발표하고 역풍이 불어서 온 거다. 우리 기술을 북돋아 줘야 한다.

    Q. 그동안 연구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자금 조달이었다. 자율주행을 위한 센서, 기기를 사는 것 말고 어려운 게 있겠나. 다른 나라도 다 한 건데 우리라고 못 할 것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집념'의 차이다. 꼭 해내야 한다고 하면 접근법이 다르다. 정책과 비전을 제대로 펼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 한 명만 있어도 성과가 나온다. 그리고 연구가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하겠다는 약속이 있으면 기술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연구자는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어야 한다. 제도, 대열에 들어갈 수준이 되어야 한다. 계산되지 않는 걸 되는 것처럼 해서 연구비 받는 건 죄악이다.

    Q. 연구자들에게 쓴소리 말고 희망적인 말씀해주신다면.

    자율주행 분야 얘기다. 하고 싶은 걸 하되 돈이 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두 가지가 같으면 금상첨화다. 이 분야가 무미건조한 분야는 아니다. 돈줄이 막히면 생계유지가 어려우니깐 돈이 될 수 있는 연구도 어느 정도 생각해야 한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희망이 있다고 본다. 각 분야에서 다들 잘하고 있는데 한군데 모여서 연구를 안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여건이 나쁘지 않다. 연구 자신감, 책임감을 가지고 1년, 3년, 10년 내 목표 스케줄을 만들고 가면 못할 이유가 없다.

    Q. 아직도 현역이신데, 아침에 일어나실 때 여전히 즐거우신가.

아직도 즐겁다. 오늘 해야 하는 일이 없으면 사는 맛이 안 난다. 최근에 바둑, 낚시해야 할 나이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아직은 그렇게 소모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나가서 일할 수 있다. 논리적 사고나 추론은 여전히 문제가 없는데 청각이 나빠진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건 빼고 여전히 부담이 없다.

    Q. 여전히 목표가 있으신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AI 응용 분야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자율주행차가 장애물을 피하고, 차선을 감지하고 속도를 조절하고 조향하는 것. 사람의 인지 능력을 흉내 내려고 애쓰는 기술을 프로그램화하고 있다. 사람의 판단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아직 더 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항만·물류 자동화, 농촌 일손 기계화, 쓰레기 수거 자동차 자율주행화는 단기간에 가능성 있는 분야다.

    Q. 오랜 기간 한 분야를 파셨는데, 꾸준히 하실 수 있던 원동력은.

    운이 좋았다. 오래 팔 수 있는 분야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다. 자율주행 분야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분야다. 그래서 자기가 속한 분야가 얼마나 깊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건 중요하다. 하나를 꾸준히 밀고 나가서 공헌할 수 있는 분야 말이다. 이곳저곳 왔다갔다 끝나선 안 되지 않겠나. 미래에 대한 전망,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술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Q. 젊은이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으시다면.

    제가 그럴 입장이 못 된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하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고 극한치까지 가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기 싫은 일을 별수 없이 하는 경우가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일어나기 어려워진다. 쉽사리 피곤해진다. 그런 삶은 불만족스러운 삶이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과 먹고 살아야 하는 일,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술 먹는 게 좋다고 술만 먹으면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성취해야 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자기가 좋아하는 일,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의 접점을 찾으면 좋지 않겠나. 아침에 일어나는 게 가벼워야 한다. 하는 일에서 즐거움이 있어야 성취감도 있고 발전할 수 있다.

  
    한민홍 전 고려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아침에 일어날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것보단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참고문헌>
    1. 김인한, "한민홍 전 고려대 산업공학과 교수 :80세에도 자율주행 '현역'", 과학전문언론 대덕넷, 202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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