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바로잡기에 평생을 바친 고고학자 손보기 선생
손보기(孫寶基, 1922년 7월 7일 ~ 2010년 10월 31일[1])는 대한민국의 사학자, 고고학자이다.[2] 호는 파른이며,[주 1한반도 구석기 연구의 아버지’로 불린다.[3]
1964년의 충남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로 널리 알려졌다.[5] 이 발굴로 한반도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로써 ‘일본을 앞서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라는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을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뒤집었다. 그 뒤 92년까지 12차례에 걸쳐 발굴과 조사 작업을 벌였다. 2009년, 손보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파른 손보기 기념관’이 공주 석장리에 문을 열었다.[3]
1974년 ~ 1980년에는 충북 제천의 점말동굴유적을 발굴하였으며, 한자와 일본어 용어를 한국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등 대한민국 고고학에 업적을 남겼다.[6]
1969년부터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구성한 고서위원회에 참여하였으며,[7] 1945년 구입한 《규원사화》 고서에 대하여 1972년 11월 3일,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의원이었던 이가원(李家源), 임창순(任昌淳)과 함께 조선 중기에 씌여진 진본임을 확인하고 인증서를 작성하여 국립중앙도서관의 직인으로 인증하였다.[8]
또한 1972년부터 직지심경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임을 주장하였고, 이듬해 활자를 연구한 공로로 독일 마인츠시에서 메달을 받는 등,[9] 고인쇄술 연구에도 기여하였다.
저서로는《한국의 고활자》(1971년),《금속활자와 인쇄술》(1977년),《세종대왕과 집현전》(1985년), 《세종시대의 인쇄출판》(1987년),《한국 구석기학 연구의 길잡이》(1988년),《석장리 선사 유적》(1993년),《장보고와 청해진》(1996년),《공부의 즐거움》(공저, 2006년),《석장리 유적과 한국의 구석기 문화》(2009년) 등이 있다.
- 논문으로는〈이조전기정치기구의 기능적 분석〉,〈석장리 자갈돌 찍개문화층〉,〈석장리 후기구석기시대 집자리〉,〈미국에 있어서의 광복운동〉,〈체질학상으로 본 한국사람의 뿌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