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국은행 머릿동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글씨 정초(定礎) 그대로 보존 결정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6.13 02:58

                                          한국은행 머릿동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글씨 정초(定礎) 그대로 보존 결정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글씨 머릿돌’을 보존하기로 최근 결론이 났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는 지난달 26일 회의에서 옛 한국은행 본관(사적 280호)의 머릿돌 관리 방안을 심의한 끝에 돌을 그대로 두고 설명 안내판을 따로 설치하기로 의결했다. 머릿돌에는 한반도 식민지화에 앞장섰던 초대 조선통감 이토의 친필로 ‘定礎’(정초·주춧돌을 놓는다는 뜻)가 새겨져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 글씨 ‘定礎’(정초·주춧돌을 놓음)를 새긴 옛 한국은행 본관 머릿돌. 최근 문화재위원회에서 보존하기로 결론이 났다. /문화재청이토 히로부미의 친필 글씨 ‘定礎’(정초·주춧돌을 놓음)를 새긴 옛 한국은행 본관 머릿돌. 최근 문화재위원회에서 보존하기로 결론이 났다. /문화재청

   논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용기 의원이 이토 친필설과 함께 처리 방안을 질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 의원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민족의 원수인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며 “저는 건물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정초석 하나 옮기자는 주장을 하는 거고…”라며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문화재청은 전문가 조사를 벌여 이토 친필이 맞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방안은 세 가지다. ①머릿돌은 그대로 두되 이토의 글씨라는 안내판을 설치 ②머릿돌 글씨 부분을 석재로 덮어 씌우기 ③머릿돌 철거 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 근대분과의 한 문화재위원은 “원형을 유지하고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했다. 돌을 철거하거나 글씨를 새긴 표면을 덮어 흔적을 지우는 것은 단순히 ‘정초석 하나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또다른 훼손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과정이 떠올랐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이때도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일제 침략의 상징이자 치욕의 흔적인 총독부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그럴수록 보존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완전 철거, 원위치 보존, 이전 복원 등 여러 의견이 나왔으나 끝내 완전한 철거를 강행한 대목은 두고두고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중앙돔 첨탑을 해체하고, 이듬해 11월 전체 건물이 폭파되는 장면이 중계되면서 통쾌한 감정을 느낀 국민도 많았을 것이다.

   ‘네거티브 유산’에 대한 철거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총독부 건물은 일제 36년간의 역사만 담고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의 산실이자 우리 현대사의 역사적 기념물인 중앙청이었다는 것. 총독부 건물 철거는 뒤집어보면 대한민국 산업화와 근대화의 현장을 우리 손으로 깨끗이 부숴버렸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본관 건물은 1909년 주춧돌을 세운 뒤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됐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경제 수탈을 위해 일본이 세운 건축물이지만, 광복 이후 1950년부터 한국은행 본관이었고 6·25전쟁 때 폭격으로 내부가 불에 탄 뒤 1958년 1월 임시로 복구했으며, 1989년 5월 원형 복원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토의 흔적을 지우면 당장 속이야 후련하겠지만, 수탈의 증거와 함께 현대사의 현장을 우리 손으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다행히 근래 들어선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네거티브 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치욕의 순간을 간직한 유산이라고 해서 눈앞에서 없애버린다고 그 시간까지 도려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처럼, 남기고 알려서 과거에서 어떻게 교훈을 얻을지 되새겨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남겨야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허윤희, "부끄러운 역사도 남겨야 한다", 조선일보, 2021.6.11일자. A27면.

시청자 게시판

2,114개(12/106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5115 2018.04.12
1893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즐길 권리를 되찾아 줍시다 [1] 신상구 315 2022.05.28
1892 과거는 유교국가 떠받치는 인재풀, 조선판 능력주의 사진 신상구 321 2022.05.28
1891 ‘청주대 출신’ 성악가 연광철, 대통령 취임식서 ‘애국가’ 사진 신상구 452 2022.05.27
1890 인간적이라는 것 사진 신상구 325 2022.05.27
1889 1세대 건축가 김중업 탄생 100주년 사진 신상구 496 2022.05.27
1888 중국에도 이름 떨친 한석봉(한호) 이야기 사진 신상구 409 2022.05.26
1887 <특별기고> 의암 손병희 선생의 생애와 업적과 100주기 추도 사진 신상구 665 2022.05.26
1886 선조가 명나라 망명을 포기한 이유 사진 신상구 712 2022.05.25
1885 고종의 무능과 실정으로 대한제국의 잃어버린 10년 사진 신상구 381 2022.05.24
1884 청석학원 설립자 김원근·김영근 형제 삶 재조명 사진 신상구 522 2022.05.24
1883 초(超)인플레이션 사진 신상구 353 2022.05.24
1882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 사진 신상구 501 2022.05.23
1881 최영환 한국추사연묵회 이사장 신상구 681 2022.05.23
1880 한국인이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려면 사진 신상구 246 2022.05.22
1879 장애를 극복한 3명의 위인들 이야기 사진 신상구 915 2022.05.22
1878 순종, 바다 건너 일본에서 천황을 만났다 ​ 사진 신상구 377 2022.05.21
1877 <특별기고> 5·18광주민주화운동 제42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사진 신상구 512 2022.05.21
1876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전야제, 광주시민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 신상구 309 2022.05.18
1875 무엇이 같고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다른가(상) 사진 신상구 500 2022.05.18
1874 묵자를 국내 최초로 완역한 동양학자인 묵점 기세춘 선생 타계 신상구 368 202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