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을 기념하며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3.27 02:16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을 기념하며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보름 정도 앞두고 동생들(맨 왼쪽 두 명)과 빌렘(가운데 등을 보인 사람)신부 에게 유언을 남기는 모습입니다. 그는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말했어요. /독립기념관

   2021년 3월 26일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지 11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안 의사는 순국하기 5개월 전인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이토는 당시 한일 병합을 목적으로 설치한 감독기관이었던 통감부의 초대 수장으로 한국 침략의 원흉이었죠. 안중근 의사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지만 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꽤 있답니다.
                                                                          ①처음엔 일본을 믿었어요
   러시아와 일본이 1904~1905년 한국과 만주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 러일전쟁입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 일부는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치고 아시아의 평화를 지킬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믿음이지만 안중근 의사도 그 당시에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이토 히로부미의 총살 사건을 심리한 법정에서 러일전쟁에 대해 "한국인은 일본의 승리를 마치 자국이 승리한 듯 기뻐했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일본은 러일전쟁이 막 끝난 1905년 11월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강요했습니다. 이때 안 의사는 침략자 일본의 실체를 정확히 깨닫게 됩니다. 이후 그는 "일본은 뱀과 고양이같이 한국을 배신했다"며 일본에 저항하겠다고 다짐했죠.
                                                                          ②독립군 장군이었어요
   1907년 일제가 한국 군대를 해산시킨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을 강행하자 안중근 의사는 한반도와 인접한 러시아의 연해주로 건너가 본격적인 항일 운동에 뛰어듭니다. 독립운동가 이범윤, 최재형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의병 조직인 대한의군에서 참모중장으로 임명된 안 의사는 1908년 두만강을 건너 일본군을 공격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법정에서 "이토는 대한의 독립 주권을 침탈했으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신분과 자격으로 그를 총살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결코 개인적인 저격이 아니었다는 거죠.
                                                                      ③이토의 죄를 15개 제시했어요
    안 의사는 법정에서 '왜 이토를 쏘았는가'란 질문에 15개 항목에 걸쳐 분명하고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1905년 대한제국 황실을 위협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게 한 죄, 1907년 정미 7조약을 강압하고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 한국의 산림과 하천·광산 등을 강탈한 죄, 나라의 주권을 되찾으려는 수많은 의사들을 폭도라며 살육한 죄, 친일파를 통해 '일본이 한국을 보호한다'라고 거짓말을 퍼뜨린 죄, 한국의 삼천리 강산을 욕심내 일본의 것이라 선언한 죄 등을 꼽았지요. 마지막 항목은 '동양 평화를 파괴해 수많은 인종의 멸망을 일으킨 죄'였습니다.
                                                                         ④자결할 생각은 없었어요
    안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저격할 때 쓴 권총은 벨기에에서 만든 권총이었습니다. 이 총은 탄창에 총알이 7발이 들어가요. 하지만 총알을 장전하는 곳에 한 발을 더 끼우면 총 8발까지 장전할 수 있었습니다. 안 의사는 이 총에 총 8발을 장전했는데요. 안 의사가 쏜 첫 세 발은 이토에게 명중했어요. 안 의사는 또 '혹시 이토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토를 수행하던 일본인 세 명에게 한 발씩 쐈습니다. 일곱 번째 총탄은 다른 사람들의 외투와 바지를 관통하고 플랫폼에 떨어졌습니다. 모두 일곱 발을 쏜 것이죠. 마지막 총탄은 쏘지 못한 채 총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혹시 자결하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 의사는 법정에서 "아직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⑤한·중·일 평화 체제 구상했어요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죽인 뒤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썼습니다. 사형 집행으로 이 책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주장이 담겨 있어요. 그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 서구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한·중·일 3국이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이 뤼순을 청나라에 돌려주고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사 항구로 만들어 평화회의를 조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국 청년으로 구성된 군대를 만들고 이들에게 2국 이상의 언어를 배우게 하자고 했어요. 또 공동 중앙은행을 설립해 공동 화폐를 만들자고 했죠. 유럽연합(EU)을 연상케 하는 평화 체제를 먼저 구상했던 거예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을 계승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칸트는 전쟁이 인류를 망하게 한다고 경고하면서 각 나라가 주권 일부를 양도해 전쟁을 막을 국제조직을 설치하자고 주장했어요.

                                                                                [잘못 알려진 사실들]
    안중근 의사가 의거 직후 품 속에 숨겨둔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라 외쳤다고 아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에요.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환영식이 열리던 하얼빈역에 들어갈 때 검문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태극기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총을 쏘고 외쳤던 말은 "코레아 우라"였다고 합니다. 러시아어로 '한국(대한제국) 만세'란 뜻인데요. "코레아 우라"가 아니라 국제 공용어인 에스페란토로 "코레아 후라"라고 외쳤다는 주장도 있어요.
    이토가 총을 쏜 사람이 한국인이란 말을 듣고 죽기 전에 '바보 녀석'이라 말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러나 안 의사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이토의 시신을 실은 열차가 출발한 이후에 밝혀졌기 때문에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또 일부 일본인은 "한국인처럼 유약한 민족이 감히 그런 거사를 했을 리 없다" "안중근이 아니라 역 2층 식당에 있던 정체 모를 저격수가 이토를 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의사가 쓴 이토의 사망진단서를 보면 총탄이 이토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관통한 게 아니라 수평으로 관통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안 의사가 쐈다는 것이죠.
                                                                                     <참고문헌>
   1. 유석재, "111년 전 동양평화 외치며 이토 저격했어요", 조선일보, 2021.3.25일자.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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