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국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9.01 17:50

                                                                             국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사진)에서 통치자와 국민 간의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가 탄생했다는 사회계약론을 최초로 주장한다. 홉스는 절대 주권을 지닌 국가를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2020년대가 열린 올해 우리 인류는 ‘국가의 귀환’을 목격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그 원인이다. 팬데믹이란 미증유의 대재난에 맞서는 강력한 국가를 어느 나라든 관찰할 수 있다. ‘강하고 유능한 국가’는 팬데믹의 시대에 국민 다수가 원하는 국가의 모범상일 것이다. 국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1. 근대 국가에 대한 회고

    지금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근대 국가’다. 국가는 근대 이전에도 존재했다. 고대 국가와 근대 국가의 결정적 차이는 네 가지였다. 근대적 관료제·자본주의·민주주의·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근대 국가다.

    이 근대 국가에는 물론 예외적 형태가 존재한다. 관료제·자본주의·민족주의는 존재하되 민주주의가 부재한 파시즘 국가가 있을 수 있고, 관료제와 민족주의는 존재하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부재한 국가사회주의 국가도 있을 수 있다. 크게 보아, 근대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와 파시즘·국가사회주의를 포함하는 권위주의 국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근대 국가는 나라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왔다. 영국과 미국에서 명예혁명과 독립혁명 이후 순조롭게 근대 국가가 발전했다면, 프랑스에서는 7월혁명·2월혁명·파리코뮌 등의 정치변동들을 통해 근대 국가가 형성됐고, 독일에서는 뒤처진 자본주의를 따라 잡기 위해 권위주의 국가가 등장했다. 이 독일 모델이 일본 등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근대 국가의 황금시대는 지난 20세기 초반과 중반이다. 서구 국가들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해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 구축을 위해 케인스주의 정책이 추진되면서 근대 국가는 다시 한번 강한 존재로 부상했다. 근대 사회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재생산된다면, 이 자본주의 시장은 불안전한 제도이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케인스주의 국가론이 어느 나라든 일반화됐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세계화가 부상하면서 근대 국가는 퇴조하기 시작했다. 세계화가 특히 두드러진 영역은 경제와 문화였다. 경제적 차원에서는 금융자본의 세계화가, 문화적 차원에서는 미국문화의 세계화가 세계화를 이끌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초국적 대기업, 국제연합(UN) 등 국제기구, 그리고 미국식 생활방식이 기성 근대 국가를 이뤄온 경제·정치·문화를 빠르게 대체했다.

    더하여, 지방화도 세계화의 반대 방향에서 근대 국가를 압박했다. 서구의 경우 지역적 경제통합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알사스 로렌은 파리보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북부 이탈리아는 남부보다 알프스 국가들과 긴밀한 경제적 통합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지역적 경제통합은 기성 근대 국가가 갖고 있는 권위의 재분배를 요구했다.

    이러한 세계화와 지방화의 진전이 함의하는 바는 근대 국가의 쇠퇴였다. 1980년대 이후 국가가 삶의 큰 문제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들에는 너무 큰 것이 되어버렸다는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견해에 많은 이들은 공감을 표했다. 근대화와 함께 부상한 국가의 시대는 이제 저무는 것처럼 보였다.

                                                                                       2. 2020년대와 국가

2011년 세계화된 금융자본을 규탄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는 국가의 귀환을 바라는 사회적 흐름에 지지를 더했다. 사진은 2011년 10월 15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를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민들. 뉴욕=AFP 연합뉴스


    이러했던 국가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서였다. 금융위기는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타격을 입혔고, 많은 이들은 국가를 중시하는 케인스주의 패러다임의 귀환을 예견했다. 특히 2011년 세계화된 금융자본을 규탄하는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이러한 흐름에 사회적 지지를 더했다.

    그런데 국가의 귀환은 예상했던 것만큼 진행되지 않았다. 까닭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세계화 시대에 구축된 글로벌 가치 사슬이 이미 공고화된 형태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보사회의 진전에 힘입어 성장한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국가가 아니라 세계화에 친화적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렇게 세계화된 경제 질서에서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초국적 케인스주의’가 작동해야 하는데, 케인스주의는 일국적 차원을 중시한 경제이론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작 국가의 귀환에 영향을 미친 것은 포퓰리즘의 부상과 코로나19 팬데믹의 발생이었다. 먼저, 포퓰리즘은 세계화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트럼프정부의 리쇼어링과 이민정책은 대표적이었다. 해외에 나가 있는 기업들을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은 오바마정부에서 이미 추진됐지만, 트럼프정부에 와서 더욱 강화됐다. 더하여, 트럼프정부는 노동자계급을 보호하기 위해 이민의 장벽을 높이는 방어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경향은 서유럽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었다.

   이러한 흐름의 결과, 지난 2010년대 후반 세계화에는 상반된 경향이 혼재했다. 경제적 차원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세계화 경향이 계속된 반면, 정치적 차원에서는 포퓰리즘의 부상으로 세계화에 맞서는 국가의 위상이 강화됐다. 여기에 21세기에 들어와 점증해온 불평등은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있는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했다.

한편, 이러한 국면에서 올해 예기찮게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만큼 이에 맞서는 국가 개입을 자연스레 강화시켰다. 국가는 의학적 방역을 위해 다양한 안전 정책을, 경제적 방역을 위해 강력한 재정정책을 추진했다. 이 지구에서 가장 작은 바이러스가 가장 큰 세계화를 후퇴시키고 그 자리에 국가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제임스 로빈슨은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용적 경제제도를 강조한다.


    2020년대 국가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국가의 귀환을 가져온 포퓰리즘과 코로나19 팬데믹을 지켜볼 때 강화된 국가의 위상은 앞으로 상당 시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포퓰리즘을 발흥시킨 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능이다. 정치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강한 국가를 앞세운 포퓰리즘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다. 둘째, 백신 개발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더라도 바이러스 폭풍은 이제 우리 인류가 일상적으로 당면할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주도하는 ‘안전국가’는 어느 나라든 매우 중대한 국가적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2020년대 현재 국가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세 가지다. 불평등 해결, 일자리 창출, 그리고 안전사회 강화다.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용적 경제제도를 강조하고, 이 경제제도를 뒷받침할 수 있는 포용적 정치제도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2020년대에는 불평등, 일자리, 안전을 위한 포용적 경제와 정치를 위한 ‘강하고 유능한 국가’ 패러다임이 한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3. 한국사회와 국가

    우리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 선명히 드러난 것은 산업화 시대다. ‘발전국가’라는 말이 보여주듯, 국가는 자신이 시니어 파트너가 되고 기업을 주니어 파트너로 삼아 산업화를 이끌어왔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발전 전략은 그 명암이 분명했다. 세계 역사에서 드문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그 성장을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보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을 드러냈다.


우리사회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국가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됐다. 사진은 1997년 12월 3일 IMF 구제금융 양해각서 서명식에서 임창렬(가운데)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미셸 캉드쉬 당시 IMF 총재와 서명 후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한편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발전국가에서 새로운 신자유주의국가로 변화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우리 국가는 경제정책은 물론 사회정책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작은 정부’를 표방한 신자유주의에 가장 친화적인 이명박정부도 4대강 사업에서 볼 수 있듯 발전국가의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은 단적인 증거라 할 만하다.

    2020년대 우리 사회에서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서구사회의 흐름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 국가도 ‘안전국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더하여,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복지국가’를 강화해야 하고, 제4차 산업혁명에 마주해서 ‘고용국가’로의 전환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고용국가란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육개혁 및 직업훈련 등의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가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안전국가, 복지국가, 고용국가의 공고화다. 우리 국가가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문헌>

    1. 김호기, "다시 국가의 시대로, 키워드는 안전, 복지, 고용", 한국일보, 2020.9.1일자.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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