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재야사학이 혼동하고 있는 한군현 문제]
전한군현지역과 후한군현지역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한나라는 중간의 신나라를 경계로 전한과 후한으로 나눈다.전한 한무제가 설치했다는 한군현지역은 위만조선이 위치한 요서지역이다.
따라서 전한시대 한군현지역인 임둔태수 인장이 요서지역에서 출토되었듯이 요서지역에서 출토되는 한군현유물은 전한시대 유물이 틀림없고, 북한지역에서 한군현 유물이 출토된다면 후한시대 유물이 틀림없을 것이다.
물론 북한지역에서는 최씨 낙랑국시대 유물도 출토될 것이고, 공손강집단의 유물들도 출토될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에게 멸망당한 최씨 낙랑국의 독립을 돕기 위해서 후한 광무제가 발해만을 건너 평양지역에 설치하고 살수이남지역을 차지하며 마한과 경계를 이룬 낙랑군은 북한지역이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재위37년] 내용을 보면,
漢 光武帝 遣兵渡海 伐樂浪 取其地爲郡縣 살水已南 屬漢
"후한 광무제(건부 20년, 서기 44년. 건무 20년)광무제가 군대를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쳐서 그 땅을 취하여 군으로 삼았다. 살수 이남이 漢에 속하였다."
또한 후한의 요동태수 공손강이 요동국이 멸망당한 후에 망명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라 칭한 대방군은 북한의 황해도 지역이다. 후한의 낙랑.대방군은 고구려 미천왕 때 모두 회복하였고, 낙랑.대방군집단은 요서의 모용선비에 흡수되었다.
요동국 멸망 후 요동태수 공손강집단이 망명한 둔유현 이남은 황해도다. 훗날 고국원왕이 전사할만큼 고구려와 백제가 영토분쟁을 일으킨 땅이다. 백제에게 요동국은 처남과 장인의 나라이기 때문에 마땅히 황해도 땅은 백제의 소유지임을 주장하게 된 것이고, 고구려는 대무신왕 시기에 정벌한 땅이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영토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한편 170년에 등장한 후한의 요동태수 공손탁이 190년에 요동지역에 요동국을 건설하고 고구려 영토를 침탈하였다. 위나라는 진제가 된 사마선을 보내어 238년에 (공손탁의) 요동국을 멸망시켰다.
이 때 [삼국지] 기록을 보면 아래와 같다.
중국 후한의 환제,영제 때에 한예韓-濊가 강성하였다. 요동국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에 대방군을 만들고 공손모와 장창을 보내어 유민을 끌어 모으고 한-예를 정벌하였고 이후에 왜국과 한이 대방군에 속했다.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建安>中, <公孫康>分 屯有縣以南荒地爲 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收集遺民, 興兵伐<韓濊>,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237년 위나라 명제는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몰래 바다건너 보내서 대방군과 낙랑군을 만들었고 여러 한국韓國의 신지들이 중국관직과 관복을 받았다.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其俗好衣?, 下戶詣郡朝謁, 皆假衣?, 自服印綬衣?千有餘人.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할하였으므로 한국의 진한 8국을 잘라 낙랑에 속하게 하여 다스리려 하였다. 한국 신지가 격노하여 대방군 기리영을 쳤다.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 分割<辰韓>八國 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智激<韓>忿, 攻<帶方郡><崎離營>. 時太守<弓遵><樂浪>太守<劉茂>興兵伐之, <遵>戰死, 二郡遂滅<韓>.
"고구려 평양성은 장안성이라고도 한다...진나라 의희(A.D 405~418년) 후 장수왕은 (요양의) 평양성에 기거하였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 평양성을 점령하였다. 고구려는 (수도를) 동쪽으로 옮겼는데, 압록수(지금의 요하) 동남 1,000여리에 있는 평양성(북한 평양성)은 전에 (장수왕이 기거하던 요양의) 평양성이 아니다." 本高句驪平壤城 亦曰長安城 漢滅朝鮮 置樂浪玄?郡 此樂浪地也晉 義熙 後 其王高璉始居平壤城 唐征高麗 拔平壤 其國東徙 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 非平壤之舊」 元史地里志 東寧路]
<舊唐書 - 東夷列傳 高[句]麗京師>高麗者出自扶餘之別種也. 其國都於平壤城, 卽漢樂浪郡之故地, 在京師東五千一百里. 東渡海至於新羅, 西北渡遼水至于營州, 南渡海至于百濟, 北至靺鞨. 東西三千一百里, 南北二千里 "고구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하였으니, 곧 한나라(후한) 낙랑군의 옛 땅이다. 경사(즉, 장안)에서 동쪽으로 5천 1백리 밖에 있다. 동으로는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으로는 요수(요하)를 건너 영주에 이른다.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고, 북으로는 말갈에 이른다. 고구려 영토는 동서로는 3천 1백리이고, 남북으로는 2천리이다."
[후한서 군국지]에 따르면 장안과 낙양까지의 거리는 950리다. 낙양 + 평양 = 5000리라고 하였으므로 장안 + 낙양 + 평양 = 5950리다. 즉, 구당서.신당서는 장안에서 고구려 평양성까지 5100리라고 하였고, 후한서 군국지는 5950리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