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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정신 계승 재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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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진행 프로그램의 주요내용 입니다.
 
 

일본은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하여 항일독립운동

투사들을 학살 투옥하고, 일체의 결사(結社)와 언론활동을 금지하였다.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우민정책을 실시하여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고, 고도의 기술을

습득 할 기회를 박탈하였다.


이러한 무단정치는 한국의 고유문화를 말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토지 ·광산 ·철도 ·금융 등 모든 분야의 이권을 독점 경영하였으며, 한민족의 경제발전마저 극도로 제한하였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해외로 망명하고, 특히 무력투쟁으로 혹은 외교활동을 통하여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선두에 섰다. 한편 국내의 대다수 농민들은 소작농(小作農) ·화전민(火田民) 등으로 전락하였으며, 생활난으로 인하여 만주(滿洲) 등지로 유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일본의 폭압(暴壓)은 지식인 ·학생 ·종교인뿐만 아니라, 농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반일감정(反日感情)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이 일본의 무단정치를 겪고 있을 무렵,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고, 1918년 1월 미국대통령 윌슨은 14개조로 된 전후(戰後) 처리원칙을 파리 강화회의(講和會議)에 제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한다’고 하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원칙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세계의 피압박민족에 대한 자극제가 되었다. 이 민족자결주의의 새로운 원칙은 항일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조류 속에서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高宗皇帝)가 갑자기 승하(昇遐)하게 되자 일본인들에 의한 독살설(毒殺說)이 유포되어 한민족의 일본에 대한 증오는 극도에 달하였다. 해외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도 활동해왔으나 1917년 스톡홀름의 만국사회당대회(萬國社會黨大會)와 뉴욕의 세계약소민족회의 등에 대표를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을 국제여론에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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