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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의 맥을 찾아서
우리나라는 민족주의의 나라다. 피는 물보다 진한 나라였다. 이런 문화는 본시부터 있었던 것이지 근래에 외국에서 들여온 문화가 아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보면 우리나라에는 본래 圓光法師의 世俗五戒 최치원의 玄妙之道가 있었다고 하는데 忠과 孝 그리고 信이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쳤다. 이것이 우리나라 민족주의 뿌리였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세계사의 대세에 어긋나는 것이며 불리하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민족주의를 국수주의라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그렇게 독성이 강한 민족주의가 아니었고 피차 몸에 보약이 되는 사상 내지 종교였다.
우리나라 역사는 단연 민족사이다. 민족사에는 맥이 있다. 맥을 짚어보면 아직은 맥박이 약동하고 있다. 사람의 맥박이 뛰지 않는다면 죽었다고 한다. 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우리민족의 맥박이 약해졌는지 아주 안 뛰고 있는지 진맥해 볼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는 우리 역사의 원동력이다. 맥을 짚어 보고 약하면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아주 정하면 사망진단이 나는 것이다. 만일 죽지는 않았으나 맥박이 약하다면 보약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주의고 무엇이고 끝나는 것이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민족이란 말에 굶주린 민족이다. 민족의 우리말은 겨레, 민족이 사는 국토의 우리말은 누리.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국가는 나라이다. 얼마나 오래 된 말인가. 그러나 겨레라는 말 가지고는 민족이란 어휘가 갖고 있는 깊은 사연을 알기 어렵다.
애국가에도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란 말이 들어있다. 이 말의 뜻을 잘 새겨 보면 아무리 우리나라를 떠나 외국에 살게 되더라도 대한민국 조국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을 피와 역사를 같이 하였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라 하였다.
내 몸이 남의 몸이 될 수 없듯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남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가르침)을 배웠고 또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였으나 그들이 합하여 천당을 세워주고 극락세계를 만들어 준다 해도 그 곳이 우리가 세운 나라가 아니라면 나는 절대 그 나라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김구는 민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민족이 없다면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나라 없이 산 경험을 가진 민족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주장이다.
민족이라는 자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다. 민족의 자각이 있어야 거기서 단결력이 생겨 단합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살아있다.
이 지상에는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다. 일설에 6000개나 되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단일민족국가로서 7000만이나 되는 나라가 없었으니 우리나라는 그 점에서 예외라고 한다. 일본과 중국이 있다고 하나 두 나라는 단일민족이 아니다. 중국은 50이 넘는 소수민족이 있어 전형적인 다민족국가이다.
우리는 단군조선 이후 5000년이나 되는 단일민족국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느 때는 일시 분열되기도 하였으나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사 속에서 자라나 꽃을 피웠다.
1강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 - 민족 의식이란 무엇인가?
2강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 - 민족문화
3강 동방의 등불 코리아
4강 민족사의 맥을 이은 삼국
발해연안문명-한국고대문화의 기원
이형구(선문대 역사학과 교수 · 고고학)
발해연안문명(홍산문명)은 고대 동방문명의 중심
최근, 중국에서는 만주지방의 고대 문화를 ‘요하문명(遼河文明)’으로 표현하는데, 이형구 교수는 일찍이 발해(渤海)를 중심으로 중국 산동반도 · 요동반도 · 한반도를 포함한 발해연안(渤海沿岸)의 고대문화를 ‘발해연안문명(渤海沿岸文明)’이라 명명하였다.
유럽에서는 지중해(地中海)를 중심으로 서양문명이 탄생한 것처럼 동양문명의 중심은 발해연안에서 탄생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여러 문명 즉, 이집트문명、그리스문명、로마문명이 일어나 서양문명의 요람이 되었듯이 동양에서는 발해를 중심으로 발해연안의 산동、요동、한반도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보고자 한다. 예전에 동양문명의 중심을 황하문명으로 보았는데, 황하도 발해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발해를 동양의 지중해의 개념으로 보았다.
여기서 발해연안이라 함은 넓은 의미로 발해를 중심으로 남부의 중국 산동(山東)반도、서부의 하북(河北)성 일대、북부의 요녕(遼寧)성 지방、북동부의 요동(遼東)반도와 동부의 길림(吉林)성 중남부 그리고 한반도를 포함해서 일컫는다.
한국 민족·문화의 원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까지 60여 년간 중국의 동북지방―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 이른바 동삼성(東三省)과 북한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연구 성과는 시기적으로는 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에 이르고 있고, 각 시기마다 중요한 유적、유물들이 수없이 발굴 조사되었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발해연안 동북부、중국 하북성 북부와 요녕성(내몽고자치주 동남지역 포함)、길림성、흑룡강성 지방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이다.
발해연안은 우리나라 고조선(古朝鮮) 사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끊임없이 활동을 계속하던 지역으로서 우리나라 고대사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형구 교수는 일찍이 ‘발해연안문명’을 탐색하기위하여, 발해연안의 요서 ? 요동지역、만주지방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비롯하여 신석기시대 유적、청동기시대 유적 등 고고학적 자료(문헌)를 수집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를 토대로 1982년 6월 25일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논문초고를 발표한 바 있다. 「발해연안 북 ? 동부지구(만주) 구석기 문화」라는 제목으로 1986년 『동방학지』52호에 게재되었다.
발해연안 북부의 요서?요녕 지방과 요동반도 그리고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는 한국 민족·문화의 원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많이 발견되었다. 1950년대 이후 30여 곳에서 많은 구석기시대의 문화 유적과 인류화석(人類化石)이 발견되었다...
한국고대문화의 기원에 대해
우리민족과 문화의 원류를 밝히면서 어느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학문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우리 민족문화의 기원을 찾는 길은 오로지 최선을 다하여 진리에 접근하는 것일 뿐이다. 마치 ‘시지프스(Sisyphus)의 고된 작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고대 우리 민족의 무대와 그 문화의 영역을 오늘날의 한반도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그나마도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편 우리 민족문화의 성장과정에는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민족문화가 외부로부터 기원하였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한낱 자극 일 뿐이다. 우리는 마땅히 발해연안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문화의 기원을 찾아나가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도 동방문명(東方文明)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엄연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문명의 중심이 바로 발해연안이라고 하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1강 발해연안문명은 고대 동방문화의 중심 2강 발해연안문명의 빗살무늬토기와 옥문화 3강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I) 4강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II) -돌무덤과 동이민족 5강 발해연안의 갑골胛骨문화 6강 발해연안문명이 한국고대문화의 원류다
우리는 왜 동이를 알아야 하는가?
(김선주 박사)
1. 우리는 왜 동이를 알아야 하는가?
단재 신채호선생은 “무정신의 역사가 무정신의 민족을 낳으며, 무정신의 민족이 무정신의 국가를 만드니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독사신론(讀史新論)』) 라고 하여 한민족의 민족혼이 없음을 강렬하게 질타하였다.
지금 우리앞에 놓여있는 역사현실은 어떠한가? 중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그 뿌리를 자르려 하고 있고, 한민족 조차도 단군조선의 실체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민족은 모두 단군조선의 후예들이다. 단군조선의 뿌리는 배달민족이다. 배달민족은 바로 ‘광명의 땅 동방에 살고 있는 어진 사람’, 즉 동이족을 일컫는다.
2. ‘동(東)’과 ‘이(夷)’ 그리고 동이 개념
‘동(東)’: 동이의 동은 해가 떠오르는 방위로 광명을 상징한다. 태양의 본질은 광명이다. 따라서 광명사상은 동이족의 태양숭배사상과 연결된다.
태양을 숭배하는 동이족의 봉(鳳) 토템과 삼족오(三足烏)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개 닭의 무리에 속하는 봉조는 원래 긴꼬리 들닭, 혹은 길들여진 집닭을 말한다. 해가 떠오르면 울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태양이 닭을 불러 깨우거나, 혹은 닭이 태양을 일깨웠다고 여겼으므로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가 된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고대인들은 태양과 닭류에 대해 숭배하기 시작했고, 양자가 복합된 토템이 탄생되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신화학자 왕대유(王大有)선생은 봉황은 동이족의 상징 토템이었으며, 그 원조는 삼족오라고 설명하였다. 삼족오는 태양새로서 동이족의 광명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夷)’: 동이’의 ‘이(夷)’는 ‘활을 사용하는 동쪽 사람’의 의미를 가진다. 후한시대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이에 대해 “동방지인야. 종대종궁(東方之人也. 從大從弓)”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이’라는 것은 대(大), 즉 인(人)을 따르고, 궁(弓)을 따르는 것으로, 동이는 활을 쏘는 동쪽 사람이란 뜻이다. (금문의 夷는 바로 서있는 사람 뒤에 활(弓)이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夷의 금문]
‘동이족(東夷族)’은 ‘동쪽에 있는 이 즉 활을 잘 쓰는 족속’이란 뜻이다. 이는 당시 동북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기마민족의 문화양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음으로 ‘이’는 ‘신을 대신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신성한 종족을 뜻한다.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서 ‘이’는 사람이 단정하게 윗사람에게 예를 표하듯 서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夷의 갑골문, 금문]
특히 상대에 동이는 ‘인방(人方)’, ‘시방(尸方)’이라 불려지기도 했다. 이때 ‘시(尸)’는 단지 주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사 때 신이 응감하도록 앞에 세워놓은 시동, 신상으로 ‘신을 대신하는 사람, 신의 대리인’을 뜻한다. 이것은 당시 동이족이 얼마나 신성한 종족으로 비쳤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이’는 ‘인(仁)’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동이’는 동방에 살고 있는 ‘어진 사람(仁者)’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이의 옛 글자는 이( )라 하는데 이( )는 인야(仁也)라고, ‘어질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이’가 ‘어진 사람’을 뜻하고 있음은 『후한서』「동이열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한서』「동이열전」에서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동방을 이라 한다.’ 이는 근본을 말한다. 그 의미는 이가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해 만물이 대지로부터 솟아나오는 것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동이족이 군자국의 주체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이’의 ‘이(夷)’는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 중에서 중심적인 의미는 ‘ 활을 사용하는 동쪽 사람’, ‘신을 대신하는 사람’, ‘어진 사람(仁者)’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동이는 동쪽의 활을 쓰는 어진 사람이란 의미로 우리 민족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3. ‘동이’의 의미 변화
‘동이’가 어떻게 해서 변방의 오랑캐로 폄하되었을까?
동이가 오랑캐의 호칭으로 불리워지게 된 배경으로 화하족과 동이족의 정치적 대결을 들 수 있다. 이 대결은 대략 4700년 전 중국 사람들이 그들 민족의 시조로 삼아 온 황제 헌원과 치우천황과의 탁록대전으로 시작된다.
치우천황은 신농씨의 마지막 임금인 유망 때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유망을 추방하고 새로운 정치를 펼쳤다. 이 때 헌원이 천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치우천황에게 도전하였다. 이에 치우천황은 헌원과 10년동안 73회의 전투를 해서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
여기서 황제헌원과 그 족속(화하족)은 치우천황과 그 족속(동이족)에게 패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물론 그 후손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치우와 동이족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품고 2300여년을 흘러 진시황까지 내려오게 된다.
진시황에 이르러 강력한 힘을 길러 동진을 거듭하여 중국대륙 전체를 그들 화하족의 확실한 터전으로 만드는 전국 통일을 달성하고, 동이족을 변방으로 밀어내거나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동화시켜 통일제국을 이룬 것이다.
특히 한무제 때 사마천이 중국 최초의 정사인 『사기』를 저술하면서 동이족 역사의 뿌리부터 왜곡하였다. 사마천은 탁록 대전의 역사를 날조하고 치우천황의 존재를 왜곡하였고, 중국이 천자국으로서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사관을 만들어 내었다.
한나라 이후 쓰여진 사서에 나오는 동이는 전국시대까지 동방족을 뜻하는 ‘동이’와는 달리 ‘동쪽 오랑캐’란 뜻으로 비하되었다. 즉 당시 동이와 같이 사이(四夷)라고 불리웠던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과 같은 오랑캐의 맥락으로 동이라 한 것이다.
이에 비해서 우리 역사상에 동이라는 표현이 우리 민족에 대한 표현으로 수용된 것은 조선시기에 이르러서다.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동이의 의미와 내용은 중국인의 관점에서 중화에 대비되는 오랑캐나 주변국에 대해 폄하하는 표현과 함께 우리 민족에 대한 통칭적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조선중기의 실학자들에 의해서 동이는 화하에 대응하는 동등개념으로 인식하는 상황이 정립되기 시작하였다.
실학자들은 동이의 중심거점이 요동지역이었으며 단군으로 상징되는 우리 민족이 이들 동이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학자들의 입장은 민족주의사학, 재야사학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동이족 역사는 그 뿌리부터 왜곡되었다.
중국은 사마천의 탁록대전 왜곡부터 지금의 동북공정까지 한민족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음모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이렇게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켜 천자국의 종주권을 찬탈하려고 끊임없이 역사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측의 역사왜곡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의 뿌리역사를 상실함은 물론 민족 정체성까지 상실하게 될 것이다. 지금 국내 학계에서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틀리다는 소극적인 주장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 국가적 역량을 발휘하여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4. 동이와 동방의 뿌리시대 국가
동방의 뿌리시대 국가로 환국-배달-조선으로 이어지는 삼성조시대가 존재하였다.
환국은 전 인류의 뿌리국가이면서 우리 한민족의 뿌리나라이다. 왜냐하면 환국 - 배달국 - 조선으로 이어지는 민족을 보통 동이족의 중심 세력이라 하며, 이들 삼성조는 동이족의 종통을 이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동방의 뿌리국가는 모두 광명사상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환국의 ‘환’은 하늘의 광명을 말한다.
환국의 종통을 이어 받아 새로운 문명을 개척한 국가는 광명의 나라 배달이다.
배달은 광명을 의미하는 ‘밝’과 땅을 의미하는 ‘달’의 합성어로서 태양이 가장 먼저 비추는 밝은 광명의 동방 땅을 의미한다.
배달국은 환웅 18세에 전체 역년은 1565년에 이르렀다. 배달국이 넓은 중원 땅으로 그 강역을 확장하자 결국은 서방의 한족과 동이족은 영토분쟁 및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 헌원과 치우천황은 10년 동안이나 전쟁을 하였고, 결국 치우천황은 탁록 대전에서 황제를 굴복시켜 중원의 패권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단군왕검은 18세 환웅 말엽 나라가 어지럽게 되자 그 혼란을 바로잡고 배달국을 계승하여 고조선을 개국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년 전의 일이다.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의 주인공이다. 청동기 문화의 주인공은 바로 동이족으로 당시 동북아 문명의 주역이다.
단군조선 또한 배달의 광명사상을 이어받아 광명에 비친 동방의 땅을 상징한다.
환국(7대 환인 3301년), 배달국(18대 환웅 1565), 단군조선(47대 단군 2096년), 이것이 동방한민족의 뿌리국가인 삼성조시대이다.
5. 동이문화의 중심무대
동이문화권은 중국 대륙에 폭넓게 분포하는데, 대표적인 지역으로 요령일대와 산동일대의 2대 중심지로 나눌 수 있다.
고대에 있어서 동이족의 활동무대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동북아 대륙의 문명중심지를 포괄한다.
동이족의 발상지는 지금의 바이칼호 일대로, 그 후 점차 남하하여 요령성 서부에 와서 한 갈래는 동북으로, 다른 한 갈래는 발해를 따라 산동반도로 진출하였다.
1) 요령일대를 중심무대로 삼은 동이족
바이칼호에서 남하한 동이족이 요령성 서부에 정착해 배달국 시대의 홍산문화를 이루어 냈다.
동이족의 종족 중에서 후에 우리 민족을 형성하는데 주류가 된 것은 예맥족와 한족(韓族)이었다.
예맥족은 넓은 의미에서 동이족이며, 맨 먼저 요령 일대에 터전을 마련하여 한층 진보한 문화를 마련했던 민족이다. 예맥족에서 예족은 농경생활을 영위해왔던 선주민들이고, 맥족은 유목적 기질을 지닌 이주민이다. 예맥족은 발달된 농경문화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먼저 홍도 계통의 문화와 그 종족들을 흡수하여 보다 넓은 문화기반을 만들면서 우리 민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예맥족(濊貊族)은 배달국과 후에 고조선을 이룬 중심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산동일대를 중심무대로 삼은 동이족
동이족은 초기에는 구려(九黎)라 하였고, 4700여년 전 배달국 14대왕 치우천황의 전성시대부터는 치우족, 삼묘족(묘만족)이라 불렀다. 오늘날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상고시대 동북아시아에는 화하족(華夏族 또는 漢族), 동이족(東夷族), 묘만족(苗蠻族) 등 3개의 부족집단이 있었다고 본다.
동이족은 산동(山東)성 남부를 기점으로 산동성 북부와 하북(河北)성, 만주지역, 한반도, 일본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하남(河南)성 동부, 남쪽으로는 안휘(安徽)성 중부에 이르며, 동으로는 바다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거주했다. 역사의 기록으로 볼 때, 동이족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복희·신농·치우 등이 있다.
먼저 복희는 주역의 창시자이자 인류문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으로 8괘를 그려 역학을 창시했고 인류가 우주의 실체와 변화원리를 알 수 있게 한 분이다. 이 역학이 서양에도 전해졌고 피타고라스에게도 영향을 주어 수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는 서양학자의 연구결과도 있다. (『낙서의 유산』)
복희는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진 무늬에서 하늘과 땅의 생명의 율동상을 깨닫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것이 바로 하도(河圖)이다.
의약과 농경의 창시자인 신농(神農)은 천수(天水)지방에서 출생하여 강수(姜水, 섬서성 기산현) 땅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곳의 지명을 따서 성을 강(姜)이라고 하였다. 그의 시신은 호남성 차능현에 묻혔다고 한다.
묘만족은 호북(湖北)성과 호남(湖南)성을 중심으로 거주했고, 삼묘·구려·형만·요족 등 30여 개의 지파가 있으며 치우는 그들의 지도자이다. 여기서 치우는 동이의 대표적 인물이면서 묘만족의 지도자이기도 하니, 구려가 동이의 대표 부족이었다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묘만족 연맹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치우가 중원을 개척하여 넓힌 뒤에 그 땅을 청구국이라 이름하였는데, 그 중심은 지금의 산동성 지역이었다.
동이족들은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중국 동해안 일대, 남만주. 발해만 일대, 한반도 북부에 걸쳐서 거주하면서 동이문화권(東夷文化圈)을 형성하고 있었다. 적어도 발해만을 끼고 도는 중국 동북지방, 즉 지금의 산동성, 요령성 지방은 동이문화권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 이렇게 동이족은 대륙의 주요 지역에서 활동하였고, 복희로부터 신농, 치우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에서 천하를 호령하였던 위대한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일본 고대사와 한 韓 민족
(김철수 박사 증산도상생문화연구소)
1강. 일본고대신화와 한韓민족
1. 일본의 신화계보 - 천손강림 신화
(1) 고천원 (천신들의 세계)
(2) 천손강림
(3) 스사노오
2. 천신들의 세계『고천원』은 바로 ?한반도″다
3. 일본의 신도神道문화와 한민족의 천제문화
2강. 일본고대사는 한민족의 이주사다
1. 일본문화의 스승, 한민족
(1)한반도로부터 도래인들
(2)문화(불교)혁명
(3)백제의 멸망과 야마토 왜
2. 역사왜곡의 시작:새로운 일본역사 만들기
3. 일본의 신도神道문화와 한민족의 천제문화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제갈태일 '한'문화연구회 )
제1강 '한'은 유구한 낱말이다
1. 언어는 고대 사상의 화석 '한' 의 의미
2. '한' 의 고대적 원형
3. 한글 속의 '한' 문화
4. 생활 속의 '한' 문화
5. '한'은 단군정신이다
제2강 단군정신이 말살되다
1. '한' 은 민족원형질이다
2. 왜정치하의 고대사 말살 사례
3. 단군조선을 말살하라
4. 홍산문화와 단군조선
5. 새로 써야할 고대사
제3강 '한' 은 하나되는 문화다
1. '한' 문화의 키워드 (이성적 측면)
2. '한' 문화의 키워드 (감성적 측면)
3. '한' 문화의 키워드 (기층적基層的 측면)
4. '한' 문화는 하나 되는 문화다
5. '한' 은 생명生命이다
제4강 '한' 은 보편적 가치다
1. 퍼지(Puzzy)이론과 '한'
2. 현대물리학現代物理學과 '한'
3. 과정철학過程哲學과 '한'
4. 칼 융의 전인적全人的 인간人間과 '한'
5. '한' 과 정情은 하나다
제5강 '한' 은 세계적 문화코드다
1. 조직 속의 '한'
2. 후기산업사회와 '한'
3. 글로벌기업의 성공사례
4. 유봉식회장의 성공사례
5. '한' 문화의 보편성
제6강 '한' 은 신바람을 일으킨다
1. '한' 사람의 원형
2. 神人의 復活을 기대한다
3. 21세기 교육과 '한'
4.‘신바람’과 한류
5. '한' 문화 특강을 마치며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
(배옥영 원광대학교 교수)
제1강 上帝의식의 기원
1. 上帝의식의 기원
2. 上帝의식의 변천, 형성과정
3. 생민(生民) 주체로서의 上帝
4. 후직(后稷)의 上帝의식
5. 공류(公劉)의 종주권 확립
제2강 주나라의 건국과 상제 의지의 수용
1. 주나라의 건국과 上帝의지
2. 上帝의지의 인간적 수용
3. 고공단보의 예(禮)
4. 왕계의 덕(德)
5. 문왕의 천명(天命)
제3강 천명의 수용(天命之謂性)
1. 효孝, 제悌, 자慈의 정립
2.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3. 기호로서의 성性
4. 덕德의 의미
제4강 인간질서의 확립(中庸之道)
1. 중용(中庸)
2. 중용지도의 핵심 인도(人道)
3. 인명(人性)과 천명(天命)
4. 화합과 조화의 정신
일본속의 백제
(홍윤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제1강 오사카는 ‘구다라스’ (百濟洲백제주)라는
백제인들의 개척지
1. 아키히토 일본천황의 고백
2. 일본왕실의 역사서(신찬성씨록)
3. 오사카는 고대 백제인들의 개척지(난파팔랑화도難波八浪華圖)
4. 임진왜란 직전부터 사라진 지명(백제군百濟郡)
5. 현재 오사카에 남아있는 백제의 흔적
제2강 백제신 사당과 일본어의 모어는 백제어
1.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인’
2. 일본 최초 백제神 사당 ‘미시마카모’신사
3. 고대 일본어의 뿌리는 '구다라어'(백제어)
4. 일본 오진천황의 초청으로 건너간 백제의 오경박사 왕인(王仁)
5. 일본 최초로 역사책을 쓴 사람 (백제, 신라인)
제3강 ‘구다라’(百濟,백제)열풍과 백제 성왕
1. 한류(韓流)의 원조‘다라나이(百濟無い)’
2.‘백제에서 건너온 오진천황’(百濟から渡來した應神天皇)
3. 백제 성왕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교토시 히라노신사
4. 간무천황의 생모는 백제의 여인
5. 일본 긴메이천황은 백제서 건너간 성왕
제4강 백제궁에 살던 일본 천황들
1.‘백제’가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지역 나라(奈良)
2. 일본 제30대 왕은 백제인 비다쓰 천황
3. 스이코 여왕과 옥충주자
4. 백제의 불교문화 전파
5. 오우미신궁의 神主 덴지천황은 (백제궁)을 지었던 조메이천황의 아들
제5강 나라(奈良)는 한국어의 ‘국가’
1. 한국어의 ‘나라奈良’
2. 나라땅 東大寺와 비로자나대불
3. 석상신궁石上神宮의 칠지도
4. 스다 하치만궁(隅田八幡宮)의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
제6강 일본 최초의 ‘백제사’(百濟寺)였던 젠코지(善光寺,선사)
1. 1400년의 명찰 百濟寺
2. 백제인의 숨결이 물결치는곳 구다라 샤리손쇼지
3. 교토 광륭사 반가사유상
4. 백제인의 숨결이 깃든 백제관음상
천자의 제국 고구려
(김병기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1강 고구려의 건국기원
1.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승문제
2.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
3. 고구려의 건국 신화
4. 고구려 역년 900년 설
제2강 고구려의 대외관계 - 강역
1. 중국과의 대결
2. 선비족 전연·후연과의 관계
3. 북위 왕조를 장악한 고구려인
4. 백제·신라와의 관계
제3강 고구려와 중국관계
1. 고구려의 군사력
2. 고수전쟁
3. 고당전쟁
4. 연개소문의 비도술
제4강 벽화를 통해본 고구려인의 사상과 풍속
1. 고구려인의 천하관
2. 고구려인의 종교
3. 고구려인의 풍속
제5강 고구려 유민과 망명객
1. 당의 장수가 된 고선지
2. 발해를 세운 대조영
3. 치청왕국을 세운 이정기 일가
4. 고구려에 온 망명객
제6강 답사를 통해본 고구려
1. 환인과 집안의 고구려 유적
2. 선비족의 뿌리를 찾아서
3. 북위의 황후가 된 고구려 여인
4. 산성의 나라, 고구려
한국 고대 조직사
(이강식 경주대학교)
제1강 환국조직의 구조와 기능
1. 환국의 역사적 실체
2. 환국조직의 구조와 기능
3. 환국 조직도
제2강 신시조직의 구조와 기능
1. 도시국가로서의 신시
2. 신시조직의 구조와 기능
3. 신시 조직도
제3강 고조선조직의 구조와 기능
1. 고조선의 건국
2. 고조선 역년
3. 고조선 조직의 구조와 기능
제4강 고조선사와 단군사에 대한 사관의 변화과정
1. 천신교사관: 3국3제
2. 불교사관: 1신2국2제
3. 고려의 유교사관: 1신1신인1국2왕조
4. 조선의 유가사관의 변화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대외진출사
<윤명철 교수>
1강 바다를 건넌 우리민족들 (해륙사관)
-바다로 흐르는 역사 한민족의 형성
동아지중해 모델
반도사관을 넘어 해륙사관으로
일본열도 진출과 개척과정
2 고구려의 대외진출과 무역망
광개토태왕의 해양국가발전전략.
인천 상륙작전. 광개토태왕의 경기만 상륙작전 및 발해만 공격
동아지중해 허브역할
장수왕의 경기만 쟁탈전
3 동아지중해의 임금 장보고의 해양활동과 재외 신라인들
우산국 복속과 한일 독도 문제
4. 동해의 겨울바다를 건넌 발해선단들
발해인의 해양활동과 동해경제권
5. 해양의 나라 고려의 외교와 국제무역
서희외교, 무역입국, 대몽항쟁
6. 동아시아의 국제대전 - 해양전을 중심으로
고수전쟁
고당전쟁
삼국통일전쟁
강의총정리
<윤명철 교수>
근래 민족주의를 국수주의나, 세계화에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보는 주장들도 있고, 심지어 민족을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보는 주장까지 있다.
다양한 민족과 고유문화가 서로 상생하는 길은 없을까? 이런 논쟁 속에서 우리는 ‘민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해야 할까?
2강 우리의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 민족이 과연 무엇인가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민족성은 무엇인가 이런 부분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볼 기회가 되었다.
3강 한민족의 근원과 형성과정
민족이라는 것은 비록 느슨하지만 하나의 공동체, 역사 유기체, 문명이란 큰 틀 속에서 공동체란 의미로 볼 수가 있다. 역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도 이제는 각각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또는 차단 격실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맥락 속에서 통하는 그런 구조가 되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역사 유기체 설에 가장 압축적인 것이 바로 민족이다.
4강 한민족의 정체성(민족성)
인종 민족차별,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다문화주의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말-톨레랑스, 즉 ‘관용’이 실제로는 민족주의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있으려면 나 자신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 역사, 종교에 대해 제대로 알고, 민족의 정통성과 계승성을 늘 바탕에 둘 때, 올바른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
< 손성태 교수 >
■ 세계 최초 방송공개 - 아메리카원주민의 뿌리를 밝힌다.
손성태 교수(대전 배재대 스페인어학과)가 <우리 한민족의 대이동> 3강을 통해 한韓민족사의 미싱링크(Missing Link)인, 잃어버린 부여사의 일단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한韓민족임을 밝힌다.
멕시코 80% 인구는 원주민 피가 흐른다. 중남미 인구 전체는 원주민 피이거나 혼혈이다. 지금은 원주민 대통령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속 피, 조상이 누구인가?”이다. 손성태 교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 풍속, 지명 외 여러 고문서와 유물을 통해 아즈테카 문명을 건설한 멕시코 원주민은 바로 우리의 선조임을 충격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뿌리가 한민족의 조상이라면 우리는 형제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민족은 환태평양을 이끌어갈 지도국이 될 수 있다. 설레는 맘으로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가보자.
◆ 1강 멕시코와 우리 한민족의 공통점
고구려 멸망(668년) 때부터 발해 멸망(926년) 때까지 우리 민족이 베링해 알류샨열도를 넘어 아메리카로 대규모로, 여러 번에 걸쳐, 이동해 갔다.
민족의 이동을 파도의 이동에 비유한다, 거세지다가 잦아질 때도 오랜 시간 걸린다. 우리 민족의 대이동은, 북쪽으로 휘몰아쳐 가는 파도였다. 흉노, 선비, 거란, 금나라, 몽골, 만주족 등 동북아 모든 민족은 중원을 향해 남진했다.
왜 우리 민족은 북상했는가? 이미 그 이전부터 알고 있던 길이었음이 분명하다.
◆ 2강 만주에서 춥지 반도까지의 이동증거
우리 민족이 북상했던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여실한 증거를 많이 남겼다. 동북아 대륙을 북상하면서 남긴 흔적이 증명되면, 캐나다 서해안을 따라 아메리카를 남하하면서 증명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우리의 말, 온돌을 비롯한 한민족 고유의 유물, 태양신 신앙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3강 멕시코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흔적
기원 전후 1000년 중에서도 기원후 3-8세기 고구려 멸망 후 발해까지 가장 많은 이동이 있었다. 먼저 앞서 들어간 고리족이 있었고, 826년에 넘어간 사람들이 힘을 합해 멕시코 아스테카 제국을 건설했다.
언어, 상투와 비녀 등의 의복, 윷놀이와 격구 등의 놀이와 관혼상제 풍습까지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우리 민족과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다. 손교수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이처럼 공통점이 많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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