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속리산 법주사 수난사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11.22 02:47

                                                                                속리산 법주사 수난사

▲ 법주사 전경. 보은군 제공

    아들 고종을 앞세워 대권을 잡은 대원군 이하응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는 대역사를 벌였다.

왕실에 자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안동김씨 세도에 빛을 잃은 왕권의 회복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을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당백전'이라는 이름의 화폐(동전)이다.

    하지만 그 많은 동전을 찍어낼 자재, 청동이 부족했다. 이렇게 청동이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 해결책을 건의했다.

    "속리산 법주사에 '금동미륵장륙상'이 있는데 이것을 헐면 가능하오나 워낙 유명한 사찰의 상징이라 문제입니다."

    대원군은 이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당장 가서 그것을 헐어 한양으로 가져 오라!'

    대원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법주사의 일주문. 보은군 제공
▲ 법주사의 일주문. 보은군 제공

    이미 대원군은 가야산에 있는 큰 절을 불태워 없앤 이력이 있다.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에 묘를 썼는데 그 묘 자리가 바로 가야사라는 절이었다. 이곳에 묘를 쓰면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것이라는 풍수설을 믿고 절을 불태워 없애버리고 그곳 스님들도 쫓아냈던 것. 그렇게 그는 불교와 악연이 겹친 셈이다.

    이렇게 하여 속리산 법주사의 '금동미륵장륙상'은 철거되었고 경복궁을 짓는 경비 충당을 위한 '당백전'으로 제조되었다. 그렇게 그 당시 권력은 거침이 없었다. 만약 요즘 세상에 그와 같은 일이 자행된다면 언론은 물론 불교계에서 들고 일어나 감히 꿈도 못 꿀 것이다.

#AD157958977192.ad-template { margin:auto; position:relative; display:block; clear:both; z-index:1; } #AD157958977192.ad-template .col { text-align:center; } #AD157958977192.ad-template .col .ad-view { position:relative; }
   이렇게 없어진 금동장륙상을 1939년 청동 대신 시멘트를 자료로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멘트 자재가 갖는
한계성 때문에 전체적 이미지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0년 진짜 청동을 사용하여 불상 재건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청동 160톤이 투입되었고 순금도 20키로가 넘게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동원된 공사 인력만 해도 4500명이나 되었고 3만 명 불자들이 성금을 냈다.

기단 높이 8m에 위에 25m의 높이로 우뚝 선 미륵대불은 아시아에서 제일 큰 불상이므로 법주사의 대표적 이미지가 되고 있다. 특히 아침 동이 틀 무렵과 일몰 때의 황금빛 나는 미륵대불의 모습은 장엄하기만 하다.

▲ 생명수. 보은군 제공
▲ 생명수. 보은군 제공

   참으로 법주사는 우리 역사와 명운을 함께해온 '호국 불교'의 상징이다.

    무엇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 이곳 벽암대사가 궐기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법주사 대웅전 등이 불에 타는 수난을 겪었다.

    이때 국내 유일의 목조 5층탑(국보 55호) 팔상전도 애석하게 소실됐다가 인조 때 다시 복원했다.

정말 속리산 법주사는 국보 15호 쌍사자 석등, 보물 413호 철솥 등 국보와 보물의 보고다.

    심지어 소나무까지도 국보 취급을 받고 있으니 속리산 입구에 있는 '정이품 소나무'가 그것이다. 천연기념물 103호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600년 수령의 이 소나무는 세조 임금과 연관이 있다. 1464년 세조 임금이 법주사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는데 소나무 가지가 길게 뻗혀 있었다. 그래서 '임금님 연이 가지에 걸리겠다'고 하자 그 가지가 위로 치켜 올려 무사히 통과가 됐다는 것이며 세조 임금은 감동하여 이 소나무에 '正二品(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는 것. '정2품'이면 지금의 장관급. 나무에게도 벼슬을 내린 세조의 성품을 짐작할 만하다.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53년) 의신(義信)대사가 인도에서 돌아오면서 나귀에 경전을 싣고 이곳에 와서 절을 세웠다는 법주사. 法(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는 뜻의 법주사, 초겨울 경치가 정말 '탈속'을 느끼게 한다.

                                                                                        <참고문헌>



시청자 게시판

2,095개(1/105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2656 2018.04.12
2094 낮은 곳에서 한 작은 일들은 버림받지 않는다 사진 new 신상구 9 2024.03.28
2093 물리학을 전공한 세계적 수학자 이임학 사진 신상구 24 2024.03.22
2092 <특별기고> 서해수호의 날 9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사진 신상구 24 2024.03.22
2091 광복회장 이종찬, 독립운동가 집안 잊은 적 없다 사진 신상구 29 2024.03.19
2090 북한의 역사학 및 고고학 등 인문학 연구 현황과 변화 심층 조명 신상구 31 2024.03.19
2089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2017년 9월 23일 윤동주문학산촌 개관 사진 신상구 19 2024.03.18
2088 남이홍 장군의 생애와 업적 사진 신상구 25 2024.03.17
2087 초려 이유태의 무실론적 효사상의 현대적 의미 신상구 19 2024.03.17
2086 대전문단의 거목 백강 조남익 시인 별세 애도 사진 신상구 21 2024.03.15
2085 한국 서단의 대가(大家) 초정 권창륜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사진 신상구 25 2024.03.14
2084 충북 노벨과학 리더키움 해외프로젝트 운영 사진 신상구 18 2024.03.14
2083 박목월 미공개 육필시 발견 “또 다른 작품세계” 사진 신상구 31 2024.03.14
2082 대전시 2048년 그랜드 플랜 가동 신상구 18 2024.03.13
2081 20년간 공고해진 좌편향 ‘한국사 시장’ 오류 저격하는 젊은 역사 유튜버 사진 신상구 24 2024.03.11
2080 <특별기고> 대전 3.8민주의거 제64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 사진 신상구 27 2024.03.10
2079 영화 '파묘' 처럼... 현충원 친일파, 언제쯤 들어낼 수 있을까 사진 신상구 29 2024.03.09
2078 소운서원 이정우 원장, 동·서양 아우른 첫 ‘세계철학사’ 완간 신상구 27 2024.03.07
2077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백화문으로 위안스카이 독재 비판 사진 신상구 21 2024.03.07
2076 민족사학의 큰별, 박정학 한배달 이사장 별세 사진 신상구 28 2024.03.04
2075 한국이 그려야 할 선진국의 모습 사진 신상구 27 2024.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