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빈센트 반 고호의 생애와 업적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2.26 11:51

                                                                           빈센트 반 고호의 생애와 업적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1890.7.29)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쪽에 위치한 준데르트(Zundert)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테오도루스 반 고흐)는 목사였다. 그의 어머니(코르넬리아 카르벤투스)는 1857년에 그의 동생을 낳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 테오도루스라고 이름 지었다. 1864년 빈센트는 부모와 떨어져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가난으로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1869년 빈센트는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하여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당시 빈센트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으로 인정받았다. 1873년부터는 빈센트의 동생인 테오도 브뤼셀 지점 구필화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1873년 3월 빈센트는 헤이그를 떠나 구필화랑 런던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영국에 머물렀으며 1875년부터는 파리지점에서 일하였다. 빈센트는 런던에서 부터 신비주의에 빠져 화랑일을 소홀히하였다. 빈센트에게는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었으며 그는 결국 화랑에서 해고당하였다.
   성직자의 길을 열망하였던 빈센트는 파리를 떠나 영국 램스케이트로 건너갔다. 그는 매일 성경을 탐독하고 설교 활동을 하였으며 복음 전도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빈센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신학대학에 낙방하였고 전도사 양성학교에서도 그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겨 6개월간 평신도로서 전도활동만을 허가하였다. 빈센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보리나주로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최하층민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오두막에서 지내며 전도활동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그의 광신도적인 기질과 격정적인 성격 때문에 결국 교회로 부터 전도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80년 실의에 빠진 빈센트는 그동안 계속 해온 습작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믿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빈센트는 미술공부를 위해 다시 파리로 갔다. 드로잉에 관한 기초 지식이 부족했던 빈센트는 라파르트라는 5살 아래의 미술학도에게서 드로잉을 배웠다. 이후 빈센트의 외사촌이자 헤이그화파의 유명한 화가였던 안톤 모베의 화실에서 유화를 그리게 되면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다. 이 시기에 빈센트는 그동안 열광했던 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목사인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는 과격한 성격으로 자신에게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작은 충고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곤했다. 그런 그의 성격 때문에 그에게 그림을 지도하던 안톤 모베와도 절교하게 되었다. 빈센트는 크리스틴이라는 매춘부 출신의 여자와 동거를 하며 지냈는데 그녀는 알콜 중독에 매독 환자였다. 빈센트의 가족은 그가 크리스틴과 지내는 것을 우려하였고 동생 테오는 그녀와 헤어지기를 강요하였다. 빈센트는 그녀와 헤어지는 것을 괴로워하였지만 생활비를 줄이고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그녀와 어린아이를 저버리게 되었다. 빈센트는 이때문에 양심의 가책으로 오랫동안 고통받게 되었다.
   마침내 빈센트는 브뤼셀·헤이그·앙베르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언제나 노동자·농민 등 하층민의 생활과 풍경을 그렸다. 초기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은 이 무렵의 작품이다. 1886년 화상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테오를 찾아서 파리에 나온 빈센트는 코르몽의 화숙(畵塾)에서 베르나르와 툴루즈 로트레크를 알게 되었다.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 판화에 접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풍(風)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정열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자화상이 급격히 많아진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러나 곧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서 프랑스 아를로 이주하였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반이야말로 빈센트 반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다. 그는 그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하였으며 《아를의 도개교(跳開橋)》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제작했다.
   한편 새로운 예술촌 건설을 꿈꾸고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그곳으로 올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장 폴 고갱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성격차이가 심하여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해 12월 빈센트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 후 빈센트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마구 그려댔다. 발작과 그림 제작에 지쳐 파리 근교 오베르에 있는 의사 가셰에게 찾아간 것은 1890년 5월이었다.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을 하였다고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타살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품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하였다. 사후에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근무했고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역임한 그의 제수씨인 요한나 봉어(Johanna Gesina van Gogh- Bonge)이다. 요한나 봉어는 빈센트 반 고호의 작품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와 미국 뉴욕에서 전시하고 판매하였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호의 편지를 모아 책으로 출판했다. 빈센트 반 고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의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밤의 카페》《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이 유명하다.

                                                                               <빈센트 반 고흐 연보>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에서 출생.
   1869년 사관후보생이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일을 시작.
   1875년 구필화랑 파리 지점에 취직.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탐독하는 생활을 함.
   1876년 구필화랑을 관두고 영국에 잠시 머물다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감.
   1878년 목사가 되려고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포기. 브뤼셀에서 3개월간 복음 전도사 교육을 받았으나 임명되지 못함.
   1883년 작품활동 시작.
   1885년《감자 먹는 사람들》 완성.
   1888년 프랑스 아를로 이주해 '노란집'을 예술가 공동체로 만들려고 시도. 폴 고갱과 동거.《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등 많은 작품 제작.
   1889년 파리로 생레미에 있는 정신 병원에 입원. 이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 제작.
   1890년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 사흘 간 앓다가 7월 29일에 사망.
                                                                                    <참고 문헌>   
   1. "제수씨 요한나 봉어의 빈센트 반 고호 거장 만들기", 미술과 친구되는 미친 블로그, 2015.11.18. 
   2.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이버 두산백과, 2020.2.25.
                                                                         <필자 신상구 국학박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부친 신종순(辛鍾淳), 모친 유옥임(兪玉任)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2)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8)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3.15),『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5권.  
   .주요 논문 :「대전광역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2012),「서정시인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세계」(2016),「백제의 건국과정과 백제초도 하남위례성의 위치비정 논쟁」(2018) 등 105편
  .주요 발굴 : 민촌 이기영의 천안 중앙시장 3·3항일독립만세운동 기록(2006)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2007)  
   .수상 실적 : 예산군수 감사장, 대천시장상(2회), 천안시장상(2회),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동아일보·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서울일보·신아일보 등 중앙 일간지, 대전일보·충청일보·충청투데이·중도일보·동양일보·금강일보·중부매일·충남일보·중앙매일·충청타임즈·대전투데이·충청신문·충북일보·우리일보 등 지방 일간지, 충남시사신문·천안일보·충남신문·등 주간신문, 아산톱뉴스·천안일보·디티뉴스 등 인터넷신문 등에 수백편의 칼럼 기고.
   .30년 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환경운동 전개, KBS 중앙방송국 라디오 <논술 광풍>프로 출연, STB 상생방송 <홍범도 장군> 프로 출연, KBS 대전방송국·MBC 대전방송국·CJB 청주방송국 라디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발굴> 프로 출연    
   .대전 <시도(詩圖)> 동인,『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통합논술 전문가, 평화대사, (사)대한사랑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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