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특별기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의 역사적 배경과 민족사적 의의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18.09.03 20:21

                                                <특별기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의 역사적 배경과 민족사적 의의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신상구

   고려 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과 좌정승을 역임한 문신이었던 행촌(杏村) 이암(李岩, 1297년-1364) 선생은 “국가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설파했다.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2.8-1936.2.21)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또는 “애국을 하려면 역사를 읽어라.”라고 말씀히셨다. 
   그리고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를 잊게 되면 부끄러운 역사는 미래에 또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도 기록하고, 기억하고, 단죄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일제에 부역하고, 협력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지워지고 왜곡돼왔다. 그리하여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경술국치 108주년인 2018년 8월 29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에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남산과 용산 일대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독립운동 선열의 묘역이 효창원에 들어서는 한편으로 인권말살의 상징인 중앙정보부와 대공분실이 위치하고 있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해 12월 옮겨 온 5층 건물의 1~2층 140여 평 공간에 들어섰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는『친일문학론』의 저자 임종국 선생의 유품을 비롯해 민족문제연구소가『친일인명사전』편찬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를 포함한 자료 7만여 점과 5만여 권의 도서가 수집됐다. 이 가운데 엄선한 일부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나머지는 아카이브로 구축·관리된다.
   2011년 2월 건립위원회(위원장 이이화)가 출범한 지 8년여 만에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전시와 교육을 통해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담아 고발했다. 그리고 세계사상 유례없이 치열하고 지속적이었던 항일투쟁의 빛나는 역사를 알려 나가는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물론 식민 지배에 따른 일제 잔재와 분단 독재 체제의 폐해,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거사청산운동의 과정도 생동감 있게 전달할 계획이다.   2층에 들어설 상설전시장은 모두 4부다. 1부는 ‘일제 침략과 식민지 지배’이며 2부는 ‘일제 침략 전쟁과 강제동원’, 3부는 ‘한 시대 다른 삶, 친일과 항일’, 4부는 ‘과거를 이기는 힘,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에는 가치를 따지기 힘든 소중한 유물과 자료들도 공개된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니시키에, 출처와 경위가 분명한 삼일독립선언서 초판본, 남경대학살 일본군 선봉부대 일장기, 동학 의병 관련 자료, 을사오적 등 거물 친일파의 훈장 등 유품,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포스터 엽서 등 선전자료, 일기 책자 등 문헌자료, 문서 지도 사진 등 희귀한 자료도 전시된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소장자료들을 활용해 전시는 물론 출판 영상제작 등 교육교재 개발에도 주력하는 한편, 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역사문화강좌를 개설하고 답사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과정에서는 건립자금 모금뿐 아니라 유물 기증에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 강제동원피해자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기증에 함께했다. 여기에 일본 시민사회가 펼친 자료 기증운동도 큰 힘이 됐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에 걸쳐 총 6천 점이 넘는 자료를 정리해 보내온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낸 차리석 선생, 문화부장을 지낸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건국동맹의 채충식 선생, 부민관폭파의거의 주역 조문기 선생의 유품도 후손들이 기증했다. 희생자의 원혼이 담긴 유골함과 청춘만장이라 불린 장행기 등 강제동원피해자들이 남긴 유품들에는 유족들의 한이 서려 있다.
   강만길 선생의 남북교류 자료, 윤정옥 선생의 일본군‘위안부’ 관련자료, 고 성대경 선생의 의병 관련 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이돈명 변호사와 한승헌 변호사의 법조 관계 자료, 전기호 선생의 강제동원 관련 자료, 이이화 선생의 동학 관련 자료, 임헌영 선생의 재판 관련 자료, 윤경로 선생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 등도 눈에 띈다. 도쿄지회 조영숙 회원의 자이니치 관련 자료, 미국 이덕문 회원과 독일 원병호 회원의 민주화운동 자료 등 해외 회원들의 호응도 두드러졌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일본을잇는모임’에서도 다수의 자료를 수집해 보내왔다. 즈시 미노루 선생이 방대한 ‘침략신사’ 컬렉션을 기증했으며, 기타무라 메구미 씨 등이 개별적으로 기증운동을 펼치고 있다. 도쿄고려박물관 일본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재한군인군속재판을지원하는모임 오키나와한의비모임 등 과거사 관련 단체들도 조직적으로 자료기증운동을 펼쳤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들어설 건물을 51억 원에 샀다. 인테리어 비용 등까지 합하면 56억 원이다. 건물 구입엔 시민 후원금 15억 원과 <친일인명사전> 판매 기금 11억 원이 큰 힘이 됐다. 대출도 22억 원을 받았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송기인 초대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재직 2년간 급여로 받은 2억 원 전액을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건립이 추진됐다. 개관을 앞두고는 4천500여 명의 발기인을 비롯해 1만여 명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천만 원의 기금이 조성됐다. 특히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앞두고는 10만 원 이상 기부한 분들이 4800명이나 되고, 양보경 성신여대 총장과 한상권 덕성여대 총장대행 부부가 2천만 원을 보내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밖에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또한 건립운동에 동참했고,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결성해  기금 11억345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이처럼 많은 자금이 모였지만 아직은 많은 부분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당분간 모금 운동은 계속될 예정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의 역사적 의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자발적으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상임대표 이희자) 등 시민단체와 독립운동 관련 학계의 도움을 받아 민간 차원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30∼40년 간 평화와 반전, 조선인 차별 철폐 운동, 강제동원 진상 규명 연대운동을 해 오신 분들 800명 정도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지지해 1억 원이 넘는 건립기금을 모아 민족문제연구소로 송금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또한 1만 명이 넘는 애국 시민들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자발적인 역사문화운동을 통해 박물관이 개관되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단순한 자료 전시만 하지 않고 시민과 청소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열린 역사교육 공간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고 임종국(林鍾國, 1929-1989) 선생의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 유지를 이어받아 친일 인사들과 식민사학자들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애국 시민들과 양심적인 일본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고 개관하는 데에 성공하여 앞으로 친일연구를 보다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연구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고 임종국 선생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당시 이 회담의 반민족적 성격에 분노해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친일 연구를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계속 연구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임종국 선생은 1980년 11월 건강회복과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천안 근교 삼룡동에 요산재(樂山齋)란 집을 짓고 밤나무 농사를 지으며 친일 연구를 했다. 그런데 노쇠하여 농사를 짓기가 어려워 1988년 천안 시내인 구성동으로 이사해 친일파 인물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할 계획으로<친일파 총사>를 집필했다. 그런데 건강이 악화되어 1989년 11월 12일 60세를 일기로 서울 순천향 병원에서 폐기종으로 사망, 천안공원묘원 무학지구에 안장되었다. 
   친일연구의 개척자인 임종국 선생은 1929년 10월 26일 경남 창녕 출생의 시인·비평가·재야사학자로 1956년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고 서울과 천안에서 일제침략사와 친일파 연구에 천착하여『친일문학론』(평화출판사, 1966),『정신대』(일월서각, 1981),『흘러간 성좌(星座)』(1966),『일제침략과 친일파』(1983),『밤의 일제침략사』(한빛문화사, 1984),『일제하의 사상탄압』(평화출판사, 1985),『한국문학의 민중사: 일제하 문학의 민중의식』( 돌베개, 1986),『친일 논설집』(1987),『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 2』(일월서각, 1989),『실록 친일파』(실천문학사, 1991),『일제 침략과 친일 마적단』(지리산, 1991),『친일, 그 과거와 현재』(아세아문화사, 1994),『여심이회오리치면:스캔들근대사』(아세아문화사, 1995),  『또 망국 을 할것 인가』(아세아문화사, 1995),『빼앗긴 시절 의 이야기』(아세아문화사, 1995),『여인열전:여성, 세상을열다』(아세아문화사, 2006)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그는 일제강점기에 천도교 간부였던 부친 하암(河菴) 임문호(林文虎, 1900.2.3-1972.8.14일) 친일행적까지 낱낱이 밝히고 한민족 앞에 고발해 학자의 양심을 지킴으로써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임종국 선생은 1992년에는 제6회 심산상 수상을,  2005년 10월 15일에는 보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그리고 2005년 3월 29일에는 임종국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출범했다.  
   지난 2018년 8월 29일은 경술국치 108주년이 되는 치욕적인 날이었다. 1910년 8월 22일 통감 데라우치는 어전회의를 열도록 강압했다.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 체결절차를 밟기 위한 것이다. 순종황제가 참석한 회의에서 ‘전권위임에 관한 조서’를 받아내는 형식을 밟는다. 전권위원으로 임명된 총리대신 이완용을 앞세워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 ‘조약안’이 공포된 날이 바로 8월 29일이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날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국사책은 오랜 시간 동안 한일합방이라고 기술했다. 2000년대 이후 한일병합이라고 쓰는 교과서가 늘어났다. 최근으로 올수록 역사 교육을 부실하게 한 탓에 8월 29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선열들을 볼 면목이 없다. 국가추념일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의 국사 교과서가 일본의 공식 식민지로 전락한 날을 한일합방일로 기술하고 학생들에게 교육한 것을 보면 우리 교육이 얼마나 민족주체성을 상실했는지 잘 보여준다. 임시정부는 국권 상실한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로 이름 지어 추념했고 8·15 해방 이후에도 정부에서 추념하였는데 박정희 정권 집권과 동시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정부가 재정 지원을 했어야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박정희기념도서관 건립될 때는 정부 돈을 지원했다. 독립투사들이 만주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할 때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 과정을 밟고 항일독립군을 토벌하는 군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인물이다. 매국노의 길을 걸은 인물을 기리는 기념 시설에는 재정을 지원하고 독립운동을 기리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엔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
   1989년 11월 12일 임종국 선생의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유가족들로부터 임종국 선생이 남긴 자료를 물려받은 것을 계기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친일파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반민족문제연구소'를 1991년 2월 27일에 설립하였다. 이후 이 연구소는 1995년에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하였다. 2005년에는 친일 청산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임종국을 기려 수상하는 '임종국상'도 제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 연구의 선구자인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친일인명사전』과『항일음악 330곡집』 발간,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야스쿠니반대 촛불행진 등 여러 가지 애국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국가가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보다 더 많이 공헌해 주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1. 정운현. 《임종국 평전》. 시대의 창. 2006.
   2. 신상구, “임종국 선생의 올곧은 역사의식과 친일 적폐청산 노력”, 금강일보, 2017.11.17일자. 2면. 
   3. 신상구,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조속한 건립을 기대하며”, 경향신문, 2017.12.13일자. A29면2단.
   4. 강성만, "후세 미친 영향까지 두루 보여줄 겁니다”, 한겨레신문, 2018.8.24일자. 19면.
   5 '디지털뉴스부, “경술국치 108년'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1875年 운요호 사건부터 1945年 해방까지”, 경인일보, 2018.8.30일자.
   6 최창우, “한일합방, 경술국치 그리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경북일보, 2018.8.30일자.
   7 권종술, “부끄러운 친일의 역사 담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국치 108주년 맞아 개관”, 민중의 소리, 2018.8.30일자.
   8 신상구,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경축하며”, 금강일보, 2018.8.31일자. 2면.
                                                                       <필자소개>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중봉 조헌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 93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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