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18.01.30 10:52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신상구

   최근 외교부 집계에 따르면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가 743만66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년 전보다 3.4% 늘어난 것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4.4%에 해당한다. 재외동포 숫자는 정부가 1971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2009년과 2013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재외동포 가운데 외국 국적자와 재외국민의 비율은 64대 36이고 나라별로는 중국(254만8천30명), 미국(249만2천252명), 일본(81만8천626명), 캐나다(24만942명), 우즈베키스탄(18만1천77명), 호주(18만44명), 러시아(16만9천680명), 베트남(12만4천458명), 카자흐스탄(10만9천132명) 순이다.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역사와 현황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숫자가 많다는 것이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중국·이탈리아·이스라엘·인도에 이어 5번째이고 인구 대비로는 이스라엘 다음이라고 한다. 인구 대비 순위는 이탈리아나 아일랜드를 끼워 넣어 우리가 3위라고도 하는데, 최근 대량 난민이 발생한 시리아와 남수단 등을 포함하면 바뀔 수도 있다. 둘째는 고루 퍼져 있다는 것이다. 산마리노(1명), 바베이도스·안도라(2명), 세인트루시아·예멘·지부티·코모로·콩고공화국(4명), 몬테네그로·카보베르데(6명), 레소토(7명), 부탄·세이셸(8명) 등을 포함해 전 세계 179개국에 살고 있다. 유대인·이탈리아인·아일랜드인이 유럽과 북미에 집중된 것과 비교된다. 일본도 우리보다 먼저 해외에 진출했고 인구가 갑절이 넘는데도 재외동포 약 410만 명(위키피디아 자료) 가운데 300만 명가량이 미국과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고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인이 살 것 같지 않은 소국이나 오지·낙도를 방문했다가 동포를 만나 놀라움과 반가움을 느꼈다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셋째는 이주 배경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국제이주는 전쟁·재해·기근 때문에 많이 발생하고 최근에는 일자리가 가장 큰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에도 다른 특성이 발견된다. 우리나라 이민사는 거의 모든 요인을 포괄하고 선후진국의 특징을 함께 지닌다. 조선 말 흉년을 피해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구한 말 미국 하와이와 멕시코 농장으로 이민 길에 올랐는가 하면 빼앗긴 국권을 찾으려고, 일제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징용으로 끌려가 고향을 등졌다. 광복 후에도 입양, 국제결혼, 노동이민, 유학, 파견, 창업 등으로 모국을 떠나는 행렬은 계속됐고 자녀교육이나 정치적 이유로, 혹은 노후를 즐기려고 이민을 택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6·25 때 제3국을 택한 전쟁포로도 있었고, 최근에는 성 소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호주나 프랑스 등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재외동포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은 차별과 냉대 속에 힘들게 번 돈을 모국으로 송금하는가 하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민간외교관이자 한국 상품의 홍보대사이자 한류의 전도사로 나서 한국의 경제성장과 국가 브랜드 제고에 이바지했다. 조국에서 버림받은 입양인들도 뒤늦게 뿌리 찾기에 나서거나 조국을 위한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반대의 시선도 있다. 혼자만 잘살려고 조국을 버렸다느니,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는 지지 않고 건강보험 등 혜택만 보려 한다느니,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밖에 나가면 뭉치는데 한국인은 갈라져 싸운다느니 하는 등의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지구촌 시대가 도래해 국경의 장벽이 낮아지고 민족의 개념이 희미해진다지만 최근 들어 민족주의가 다시 대두하고 강대국들이 자국 우선 정책을 펴면서 국가·민족·블록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아직은 한민족 네트워크를 앞세워 국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모국이 발전해야 동포들도 현지에서 어깨를 펴고 살아가고, 동포들이 잘나가야 외국인들도 한국을 높이 쳐주는 법이다. 재외동포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차세대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절실하다.
    2018년은 광복 73주년,  러시아 한인이주 150주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해이다. KBS 중앙방송국에서는 러시아 한인이주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월 29일 꼭두새벽에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을 특집으로 보도했다.
    일제강점기 연해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독립투사로는 최재형, 안중근, 이상설, 신채호, 서일, 홍범도, 조명희, 이범윤, 이위종, 한창걸, 한성걸, 한알렉산더, 최계립, 이동휘, 김알렉산드라, 임국정, 한상헌, 윤준희, 박웅세, 김준, 전춘성, 안중, 여운형 선생 등을 들 수가 있다.  최재형,  안중근, 이상설, 신채호, 서일, 홍범도, 조명희 선생 등은 이제까지 비교적 조명이 많이 되어 많이 알려졌다. 반면에  이범윤, 이위종, 한창걸, 한성걸, 한알렉산더, 최계립, 이동휘, 김알렉산드라, 임국정, 한상헌, 윤준희, 박웅세, 김준, 전춘성, 안중, 여운형 선생 등은 조사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 항일독립운동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후손으로서 너무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연해주는 러시아 영토 중 시베리아 동남쪽 동해 가까이에 있는 지방으로 만주의 북간도와 함께 특히 항일무장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해방을 맞을 때까지 우리 독립지사들의 활동무대가 된 곳이다. 또한 효종 때 청나라의 요청으로 파병하여 러시아군을 패퇴시킨 나선정벌의 현장이기도 하다. 원래는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령이 되었다. 러시아는 그 남단에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해 극동의 군사·무역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의 독립운동 근거지였다. 우리 한인들이 많이 거주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한인들이 최초로 이주하게 된 때는 1860년대이다. 흉년과 삼정문란으로 힘들어진 함경도 지방의 몇몇 가족들이 두만강을 건너 지신허에서 러시아 최초 한인마을을 이루게 되었으며, 러시아의 극동 개발정책으로 조선인 노동자와 농민들이 유입되어 한인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파르티잔스크 대한독립군 위령비, 신한촌 기념비, 조명희 문학비, 혁명광장, 고려사범대학 등의 독립운동사적지가 있다. 신한촌 기념비는 연해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 거주지이며, 독립운동의 총본산인 신한촌의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신한촌은 한인 최초 집단거주인 개척리가 폐쇄되면서 이를 대처하기 위해 1911년 건설된 거주지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로 폐쇄되기 전까지 1만 명 이상 살고 있었다. 이 신한촌에는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민족운동단체인 권업회의 본부를 비롯한 한민학교, 권업신문사 등이 자리 잡고 있어 해외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혁명광장은 1937년 고려인들을 강제이주 시키기 위해 집합시켜 놓은 곳이다. 고려인들은 이주 3~7일 전에 통보를 받고 이 혁명광장에 집합한 뒤 기차로 중앙아시아까지 가게 된 것이다. 기차 한량에 30가족씩 태워 모두 서서 가게 되었고, 긴 여정에 노약자들이 사망하는 등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 강제이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촌과 한인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서쪽으로 3시간 반 정도 이동하면 안중근의사 단지 동맹비가 있다. 연해주 의병장 안중근의사가 1909년 2월 7일 김기룡, 강기순,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조순응, 황길병, 백남규, 김백춘, 김천화, 강계찬 등 동지 11명과 이곳 크라스키노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기 왼손 무명지를 잘라 생동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만세삼창 했다. 안 의사는 그해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대한독립주권 침탈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시간 여 이동하면 우수리스크가 나온다. 이곳에 최재형 선생이 살던 집이 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 한인 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동시에 저명한 독립운동가였다. 회사와 농장운영으로 부를 축적한 선생은 한인 인재양성에 노력했고,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빼앗기자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이범윤, 이위종, 엄인섭(일본 밀정), 안중근 등과 함께 동의회를 조직해 총장으로 추대되고, 항일의병 활동자금으로 거금을 내놓는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된다. 그 해 11월 블라디보스토크에 본부를 둔 독립단을 조직하고 무장투쟁을 준비했으나 1920년 4월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에 붙잡혀 체포됐으며, 이송 도중 탈주를 시도하다가 총격을 받고 순직했다.
     이 밖에도 연해주에는 독립운동 사적지가 많이 있다. 이상설 선생 유허지, 독립군 전투지인 볼로차예프카와 독립군 처형지인 우쫍스, 연추 마을 등 연해주 산하에 독립운동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 사적지들은 공통점이 있다. 한인들이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일본군의 잔학한 만행에 맞섰으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스탈린 독재 치하에서도 생존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연해주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잘 보존하고, 무관심으로 잊혀진 항일독립운동가들을 조사연구하여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함으로써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선조들의 위대한 항일독립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신용하,「안중근의 사상과 의병운동」, 『한국민족독립운동사연구』, 을유문화사, 1985.
   2. 박환,「러시아 연해주에서의 안중근」, 『한국민족운동사연구』30,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2002.
   3. 한강희, “한인 정신 서려있는 연해주 독립운동사적지”, 울산매일, 2017.8.13일자. 16면.        
   4. 최영덕, “이상설 선생, 100억 재산으로 독립운동 투신”, 충청매일, 2017.8.11일자.
   5. 이희용, "743만 재외동포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연합뉴스, 2017.10.31일자
                                                                               <필자 소개>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93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문학사랑> · <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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