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토정 이지함의 생애와 업적 글쓴이 localhi 날짜 2016.02.08 20:06

                                                                              토정 이지함의 생애와 업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辛相龜

                                                                      1. 지식보다는 지혜가 더 필요한 세상
   내가 20대 후반에 결혼해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살은 지가 어느덧 40년이 다 되어 가니 새삼 세월이 빠르고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나의 아내 장금순(張金淳, 63세)은 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 부동산학과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지식인이다. 그런데도 연말 연초가 되면 무속학으로 국학박사학위를 받은 남편인 나에게 유명한 무당을 소개해 달라고 애원하듯이 매달린다. 평일에도 매일 운세가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알아보기 위해『토정비결』을 본다. 운세가 나쁜 날은 외출을 하지 않고 생필품도 구입하지 않는다. 남편도 자식도 운세가 나쁜 날은 외출을 자제하라고 경고한다. 나는 아내에게『토정비결』은 미신이니 믿지 말고, 매사를 조심하면서 신중하게 처리하면, 아무 탈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 말보다『토정비결』을 신봉한 나머지 매일 정독하고 일상생활에 활용한다.
   나의 친척도. 친구도, 박사학위논문 지도교수도, 예술가도, 정치인도 나에게 유명한 무당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나의 아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연초가 되면 습관적으로『토정비결』을 보거나 점집을 찾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무속을 조사 연구하는 민속학자인 나도 연초에는 무속인들을 만나 채록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새해 운세를 궁금해 하는 민초들을 위해 최근 몇 년간 연초가 되면 일간 신문이나 주간신문에 새해 운세를 전망하는 칼럼을 기고한다.
   2016년 병신년 새해에도 내가 기고한 <병신년 새해의 민속학적 의미와 운세>란 칼럼이 일간신문인 중앙매일, 중부매일, 중도일보 등에 게재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다. 일간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네이버, 다음, 구글, 네이트 등 인터넷의 밝달나무 자유게시판, 상생방송 자유게시판, 증산도 자유게시판, 환단고기 자유게시판에도 칼럼을 게재해 놓아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있다. 영광스럽게도 어떤 유명한 역술가는 내 칼럼을 통채로 복사해 무업에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누가 나에게 유명한 무당을 소개해 달라고 해도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중개인이 아니고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민속학자로서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는 변수가 많아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도, 주역학자도, 무당도 연 초나 세기 초가 되면 나름대로 미래를 전망하는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이제까지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이 “미래는 신(神)도 모른다”고 푸념하듯이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연초가 되면 어리석게도 점집을 찾아 비싼 복채를 내고 점을 치곤한다. 올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점집을 찾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최근 정치 9단인 김종필 총리가 “정치는 허업(虛業)이다.”라고 말했는데, 지금도 정치를 하기 위해 새로 입문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현명한 것 같으면서도 어리석다. 우리가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교수, 판사, 변호사, 의사, 국회의원,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등 수많은 지식인 엘리트들이 헛된 돈과 명예와 권력욕에 사로 잡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바람에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가문에 먹칠을 하고 민족반역자로 비판을 받는 불행한 인재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자들은 지식보다는 지혜가 더 필요해 지식교육보다는 인성교육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토정 이지함은 모범적으로 인생을 살아 존경을 받고 있는 역사적 인물로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많은 지혜와 교훈을 안겨주고 있어 오늘 병신년 구정을 맞이하여 특별히 소개하고자 한다.                
                                                                           2. 토정 이지함의 생애와 업적
  이지함(李之?)은 1517년 충청도 보령에서 부인 현령 이치(李穉)와 모인 광산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는 수산(水山)·토정(土亭)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6대손으로,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아버지 이치는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었고, 150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의금부 도사와 수원 판관 등을 지냈다. 어머니 광산김씨는 판관을 지낸 김맹권(金孟權)의 딸이며, 김맹권은 세종으로부터 단종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수양대군이 집권하고 단종이 죽게되자 낙향하여 여생을 은거한 인물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현 마포 용강동 부근)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
  1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에게서 글을 배웠고, 16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형 지번을 따라 서울로 거처를 옮겼으며 형의 보살핌을 받았다. 후일 이지함은 지번의 아들인 산해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산해가 태어났을 때 집안을 일으킬 인물이 될것이라고 예견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모산수 이정랑(李呈琅)의 딸과 혼인하여 산두(山斗)·산휘(山輝)·산룡(山龍)과 서자인 산겸(山謙) 등 네 아들을 두었는데, 산휘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고 산룡은 역질에 걸려 죽었다. 산겸은 장성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싸웠으나 역모죄를 받게 되었다. 장인 이정랑은 윤원형이 꾸민 양재역 벽서사건에 휘말려 태형을 받고 능지처사되고 말았다.
  이지함은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경사자전(經史子傳)에 통달하였고, 스승의 영향을 받아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하였다. 1573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었고 1574년 6품직을 제수받아 포천 현감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직하였다. 아산현감으로 있던 윤춘수(尹春壽)가 백성들에게 온갖 행패를 부려 원성이 높자 1578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박순(朴淳)·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 교유했으며, 당대의 일사(逸士) 조식(曺植)은 마포로 그를 찾아와 그를 도연명(陶淵明)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회경제사상은 포천 현감을 사직하는 상소문 등에 피력되어 있는데,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토정비결(土亭?訣)』은 이지함이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찾아와 1년의 신수를 보아 달라는 요구로 지은 책으로, 이지함과는 관계없이 그의 이름을 가탁한 책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지함은 주자 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는 사상적 개방성을 보였으며, 이러한 까닭으로 조선시대 도가적 행적을 보인 인물들을 기록한『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소개되어 있다.
  또한 이지함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김계휘(金繼輝)의 질문에 이이가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이지함의 기인적 풍모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이지함은 수제자인 의병장 조헌이 금산전투에서 전사할 것을 예언했다. 17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청남도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과 보령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는『토정유고(土亭遺稿)』가 전한다.
  토정 이지함의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고정리에 위치하고 있다.
                                                                        3.『토정비결(土亭?訣)』의 저자 논쟁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초에 그 해의 운세를 점쳐보기 위한 교과서로 널리 알려진『토정비결(土亭?訣)』의 저자는 토정 이지함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토정비결(土亭?訣)』이 이지함의 학문적 역량에 비해 낮아『토정비결(土亭?訣)』의 저자가 이지함이 아니고, 이지함의 이름을 가탁한(빌린) 저작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특히『이지함 평전』의 저자인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누군가가 토정의 이름을 빌려서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지함의 생몰연대는 16세기(1517-1578)인데,『토정비결』이 널리 퍼진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이다. 실제로 19세기 이후 주역, 점술, 관상비기에 능했던 이지함의 행적이 민중들에게 널리 전파됐고, 후대에 비결류의 책인『토정비결』이 만들어지면서 저자로 내세운 것일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추정이다.
   신 교수는 “『토정비결』에 대해서는 이지함의 저작이라는 설과 그의 이름을 후대에 가탁한 것이라는 주장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숙종 때 그의 후손인 이정익이 이지함의 유고를 모은 문집인『토정유고』를 간행할 때『토정비결』이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현재 유행하고 있는『토정비결』이 이지함의 저작일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토정비결』이 이지함 사망 직후에 유행한 것이 아니라 300여년 뒤인 19세기 후반에 널리 퍼진 점을 고려할 때 이지함의 이름을 가탁한 것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면서도 “다만『토정비결』이『주역』과 체제가 유사하며 이지함이 비기에 능했음을 감안할 때 토정의 사상과『토정비결』이 완전히 별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처럼『토정비결』의 저자문제를 놓고 이지함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만, 이지함이 역학과 천문에 밝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이 한 해의 운세를 살펴달라고 요청해 저술했다는 설이 현재 지배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이지함이 자녀의 사주가 신통치 않게 나오자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지함이 자녀의 사주를 풀어본 결과 벼슬이나 장사를 해볼 만한 재간도 없는 것으로 나왔고, 사주팔자를 해석할 만한 능력도 없었다. 이에 자신의 능력을 전수해주기 위해 사주팔자 보는 법을 간추려서 토정비결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1. 신병주,『이지함 평전』(은둔과 변혁의 변증법적 실천가),  글항아리, 2008.12.19.
    2. 신상구,「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박사학위논문, 2011.8.
    3. “이지함(李之?)”, 네이버 두산백과, 2016.2.8.
    4. 禁東根, “『토정비결』이지함 작품 아니다”, 동아일보, 1997.1.7일자. 17면.
    5. 권순재, “토정비결, 토정 이지함이 저자 아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행 이지함은 16세기 인물 "이름빌린 저작" 설득력”, 금강일보, 2013.3.19일자. 1면.  
    6. 정상원?송은미, “역시… '정치 9단' JP”, 한국일보. 2015.2.24일자. 3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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