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과제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7.15 00:48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과제 


   지난 40년 동안 사회과학에서 가장 뜨거운 말은 ‘신자유주의’였다. 어떤 이들에겐 찬사의 대상이었고, 다른 이들에겐 저주의 대상이었다.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 말고 ‘대안은 없다’고 옹호한 반면, 세계사회포럼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반대했다. 대체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격렬한 논쟁을 일으켜왔던 걸까.

                                                                             1. 신자유주의의 이론과 역사

   서구 역사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여러 차례 쓰였다. 경제학자 이근식의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의 ‘사회적 자유주의’가 첫 번째였다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질서자유주의’가 두 번째였다. 이 글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그 세 번째인 하이에크의 진화론적 자유주의, 프리드먼의 통화론적 자유주의, 뷰캐넌의 헌법적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의 신자유주의’다.

   이론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중시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개입에 맞서는 시장의 자유를 특권화한다. 시장의 자유가 경쟁 메커니즘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에서 경쟁은 신자유주의의 기본 원리로 간주된다. 또 이 경쟁이 국민국가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와 결합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국가의 실패’를 대신해 등장한 발전전략이었다. 사회민주주의와 대비해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 감세,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국내시장의 완전 개방 등을 강조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낳은 비효율성을 줄이고 시장 메커니즘을 정상화해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게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 논리를 이뤄 왔다.

   신자유주의를 적극 채택한 사례로는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꼽혔다. 특히 영국의 대처 정부는 감세, 민영화, 사회보장기금 삭감 등을 통해 시장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 정책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진행돼온 유연화 전략과 결합해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 왔다.

   국가의 실패에 대응해 ‘시장의 복권’을 부각시킨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에 들어와 한계에 직면했다. 사회복지 축소는 소득분배를 악화시켰고, 노동시장 유연화는 고용불안 및 실업을 증대시켰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를 대신해 미국 클린턴 정부, 영국 블레어 정부, 독일 슈뢰더 정부 등의 ‘제3의 길’이 등장했다.

   그런데 제3의 길도,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명명했듯, 이른바 ‘신자유주의 좌파’였다. 제3의 길은 적극적 복지와 사회투자 국가를 내걸었지만, 이미 세계화된 무한경쟁의 시장을 과거 일국적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제어할 수 없었다. 더욱이 세계화의 새로운 첨병으로 등장한 금융자본은 정보혁명에 힘입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듦으로써 세계경제를 경제학자 수전 스트레인지가 예견한 ‘카지노 자본주의’로 변화시켰다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서였다. 금융위기는 실물위기로 확산됐고, 신자유주의를 결국 시험대 위에 올라서게 했다. 사슬 풀린 프로메테우스였던 금융자본이 ‘20 대 80 사회’를 넘어 ‘1 대 99 사회’를 만들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신자유주의가 낳은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구조화된 불평등이었다. 2011년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점령 시위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적극적 비판이자 거부였다.

                                                                           2. 2020년대와 신자유주의의 미래

   점령 시위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쇠퇴하지 않았다.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에서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를 통해 외려 성장한 과정을 주목한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증거하듯, 금융위기 이후 복지와 공공지출은 삭감된 반면 대기업들은 정부의 구제를 받았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해온 대기업 영향력은 아이러니컬하게 더 커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정치학자 김진영이 ‘신자유주의의 쇠퇴와 그 이후’에서 지적하듯, 경제평론가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 이론은 그 대안의 하나였다. 칼레츠키는 금융시장이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저성장과 불평등이 일상화되는 ‘뉴노멀’이 자리 잡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경제적 신자유주의에 맞선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이었다. 이민과 난민을 거부하는 국수주의, 기득권에 맞서는 반엘리트주의를 앞세운 포퓰리즘의 영향력이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프랑스의 인민전선,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미국의 트럼프주의는 이러한 포퓰리즘을 상징했다. 포퓰리즘이 높은 지지를 받은 이면에는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의 심화가 배경적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더하여, 21세기 벽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 팬데믹은 예기찮게 ‘국가의 귀환’을 알렸다. 전염병이라는 위험이 지구화되는 과정에서 기성의 세계화와 글로벌 거버넌스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게 됐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일차적 주체가 국가라는 사실을 재발견하게 됐다. 그 결과 현재 지난 40년 동안 승승장구해온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20년대에 신자유주의의 미래는 그러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 신자유주의는 결국 퇴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첫 번째 이유는 탈세계화에 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쌍둥이다. 앞서 지적한 포퓰리즘의 부상과 팬데믹의 발생은 탈세계화를 촉진시키고, 이 탈세계화는 글로벌 가치 사슬에의 의존성을 줄임으로써 생산·공급·혁신의 네트워크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신자유주의적 세계주의를 대신해 케인스주의적 일국주의 정책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불평등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점증하는 불평등에 대한 국민 다수의 인내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구조화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정치와 국가다. 이 새로운 과제를 부여 받은 정치와 국가에서 두 가지 대안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다. 2020년대에 어떤 나라는 포퓰리즘을 선택하고, 다른 나라는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이다.

   포퓰리즘이든 민주주의든 중요한 것은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대안이다. 누진적 조세제도와 글로벌 자본세, 일자리 창출의 적극적 복지, 그리고 전국민적 기본소득 등은 그 구체적인 대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안들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따라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의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3.  한국사회와 신자유주의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원은 김영삼정부까지 소급된다. 김영삼정부는 집권 초 금융실명제 등 개혁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내 ‘세계화’ 담론을 수용하면서 규제완화, 민영화, 시장개방을 강화하는 경제정책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가 1997년 외환위기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김대중정부의 전략은 이중적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구조조정 등을 단행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는 동시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을 제정해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사회투자 국가 등 한국적 제3의 길로 나아가려고 했다.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한 것은 이명박정부였다. 이명박정부는 감세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4대강 사업 등 토건 정책을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의 성격을 드러냈다. 박근혜정부 역시 이명박정부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규제개혁, 노동개혁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갔다.

    이어 등장한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앞세워 신자유주의와는 결이 다른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은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러한 정책의 성과에 대해선 2022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종합적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앞서 말했듯, 신자유주의는 불평등을 강화하고 구조화시킨다. 이러한 불평등은 시민사회를 황폐화시키고, 나아가 인간적인 기품을 훼손시킨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발전전략은 ‘인간과 사회 없는 시장’으로서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있는 시장’으로서의 대안적 발전모델일 것이다. 서구사회처럼 우리 사회 역시 신자유주의와 이제는 결별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문헌>

   1. 김호기, "불평등 커지고 팬데믹 휩쓸고...인내의 한계점 넘다", 한국일보, 2020.7.14일자. 24면.

시청자 게시판

2,095개(4/105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2648 2018.04.12
2034 홍범도, 육사 롤모델 될 수 있나 사진 신상구 275 2023.09.02
2033 윤석열 정권이 생각하는 홍범도의 '죄목' 살펴보니 사진 신상구 319 2023.08.30
2032 경술국치일 113주년을 맞이하여 신상구 178 2023.08.29
2031 광복회장, 국방부에 “당신들은 독립영웅이 귀찮나” 공개서한 신상구 160 2023.08.29
2030 <특별기고>옥봉 이숙원의 생애와 업적을 추모하고 관광자원화해야 사진 신상구 168 2023.08.26
2029 <특별기고> 8·15 광복 78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경축행사 사진 신상구 155 2023.08.16
2028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 이화여대서 열려 사진 신상구 150 2023.08.16
2027 충북 옥천 출신의 김규흥은 상해임시정부를 파괴하는 밀정이었다 신상구 146 2023.08.09
2026 시기 김부용과 김이양 대감 묘 찾기 사진 신상구 224 2023.08.07
2025 한암당 이유립 기념관을 건립해 대전 구도심을 활성화 하자 사진 신상구 126 2023.08.06
2024 천안 봉서초 단군상 무단철거 규탄 사진 신상구 187 2023.08.06
2023 <특별기고> 제헌절 75주년을 경축하며 사진 신상구 174 2023.07.18
2022 단군(檀君)은 신화 아닌 대한민국 국조 (國祖) ​ 사진 신상구 156 2023.07.13
2021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 사진 신상구 203 2023.07.04
2020 국조 단군을 아시나요 사진 신상구 327 2023.06.30
2019 <특별기고> 대한민국 국조인 단군 왕검 탄강 제4392주년을 사진 신상구 204 2023.06.30
2018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에 헌신하신 강만길 선생 사진 신상구 180 2023.06.28
2017 ‘한국학’과 상고사 복원의 대부 고 최태영 선생 신상구 115 2023.06.28
2016 <특별기고> 한국전쟁 73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식 현황 사진 신상구 154 2023.06.26
2015 <특별기고>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3주년을 경축하며 사진 신상구 157 202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