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 홀로 사회의 정치, 사회적 문제점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4.15 03:23

                                                                  

                                                             나 홀로 사회의 정치, 사회적 문제점


                                    

   비혼ㆍ만혼과 고령화 등으로 한국도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 열린 ‘2019 1인 가구 포럼’에서 전문가들이 1인가구 관련 정책을 토론하고 있다.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제공

   21세기 벽두에서 ‘코로나19 사태’는 개인 생활과 사회조직 방식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가에 따른 대응의 차이다.

스웨덴과 한국의 사례는 주목할 중간 결과를 보여준다. 스웨덴은 시민의 자율에 맡기는 집단 면역 전략으로 맞선 반면, 한국은 개인 행적 추적과 사회적 거리 두기 전략을 추진했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한국의 전략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스웨덴은 자신의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근대성과 개인주의의 발전

​   이러한 결과는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개인주의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개인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1인 가구의 추세다. 스웨덴의 경우 2017년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이 50%가 넘어 섰다. 덴마크, 핀란드, 독일도 1인 가구의 비중이 40%를 웃돌고 있다. 이들 나라의 청소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체로 가정으로부터 독립한다.

​   이러한 1인 가구를 상징하는 말이 ‘나 홀로 사회’다. 나 홀로 사회의 사회ㆍ문화적 기초를 이루는 사상이 개인주의다. 개인주의란 개인의 자율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 반대말이 공동체주의다. 공동체주의란 개인의 자율보다 가족ㆍ민족ㆍ국가 등 공동체의 결속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   개인주의는 개개인에게 고유한 자율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한 쌍을 이룬다. 이러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서구 현대사회의 정치ㆍ사회ㆍ문화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다원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이뤄왔다.

​   “옛날의 많은 신들은 (…) 그들의 무덤에서 기어 나와 우리 삶을 지배하고자 하며 또다시 서로 간의 영원한 투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지난 20세기 초반에 남긴 말이다. 개개인 모두가 신(神)이 되는 사회, 다시 말해 개인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가 사회ㆍ문화적 기초를 이루는 사회가 다름 아닌 현대사회다.

​   이러한 개인주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담론은 지난 20세기 전반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이었다. 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과 알베르 카뮈의 문학은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 속에 내던져진 실존적 개인의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했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 전후 복지국가 시대가 열리면서 이 실존주의의 영향력은 적잖이 감소했다.

                                 

   은평시스터즈’는 1인 여성 가구 생활 공동체다.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땐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 가끔 모여 ‘여성 서사’ 콘텐츠를 보고,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은평시스터즈 제공

   개인주의를 전후 위험사회의 등장과 연결시켜 주목한 이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다. 벡이 ‘위험사회’(1986)에서 말하는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를 뜻한다. 이른바 ‘후기 현대사회’다.

​   벡에 따르면, 위험사회의 도래는 위험의 개인주의화를 낳는다. 후기 현대사회의 등장과 함께 개인은 독립적 존재가 되지만, 그 독립은 새로운 대가, 즉 전문가에 의존하고 ‘인지적 주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노출된다. 지금껏 사회적으로 규정됐던 생애가 이제는 스스로 생산해야 하는 생애로 변화하는 개인주의화의 증가가 위험사회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벡은 분석했다.

​   “개인들은 곧 사라질 것으로 이루어진 이 정글에서 스스로 명확한 전망을 세움으로써 자기의 길을 찾아야 한다.” 위험의 개인주의화에 대한 벡의 결론이다. 나 홀로 사회의 개인주의는 양면성을 갖는다. 한편에선 공동체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선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자신의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맡게 된다.

                                                             2. 2020년대와 나 홀로 사회의 미래                                                  ‘위험사회’가 발표된 이후에도 서구사회에서 나 홀로 사회 경향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 원인은 다양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 이혼ㆍ별거로 인한 가족 해체, 고령화에 따른 노인 독신가구의 증가, 그리고 젊은 세대의 비혼ㆍ만혼 추세의 강화 등이 주요 요인들을 이뤘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나 홀로 사회가 갖는 문제가 복합적이라는 점이다. 나 홀로 사회의 원인들이 경제적 상황, 인구 변동, 개인주의 문화 등 다양한 만큼, 이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 역시 빈곤, 일자리, 안전 등 다양하다.

​   오늘날 청년세대에서 고령세대에 이르는 나 홀로 사회의 삶들이 갖는 공통의 문제는 사회적 고립이다. 어떤 이들에게 나 홀로 삶은 앞서 말했듯 자유를 선사한다. 하지만 다수의 다른 이들에겐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이 사회적 고립은 무기력을 낳고 두려움을 증가시킨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하게 된다’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은 이러한 무기력과 고립감과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3.  홀로 사회의 정치ㆍ사회적 측면


                                              

    그림 3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쓴 ‘나 홀로 볼링’은 사회적 자본의 쇠퇴 현상을 분석했다.

    측면을 분석한 이는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다. 퍼트넘이 ‘나 홀로 볼링’(2000)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쇠퇴 현상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한 사회를 지탱하는 규범, 신뢰, 네트워크를 통칭한다. 옛날처럼 ‘더불어’가 아니라 이제는 ‘나 홀로’ 볼링을 친다는 책 제목은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쇠퇴에 대한 재치 있는 은유다.

​    2020년대에 나 홀로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주목할 것은 나 홀로 사회의 경향이다. 서구 사회의 적지 않은 나라들은 앞서 지적했듯 50%에 육박하는 1인 가구의 비중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인류가 유지해온 가족이라는 제도가 쇠퇴되는 것을 이제는 부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   이러한 경향에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먼저 나 홀로 사회의 사회ㆍ경제적 삶의 질을 개선하는 사회복지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주거, 일자리, 안전 등 1인 가구를 위한 사회정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현실에 대비해 국가는 이에 대한 맞춤형 정책을 적극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   벡과 퍼트넘의 대안도 눈여겨볼 만하다. 벡은 자기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자아의 성찰적 능력 배양을 중시하고, 퍼트넘은 훼손된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하는 교육 및 미디어 등의 사회개혁을 부각시킨다. 벡과 퍼트넘이 강조하듯, 개인적 차원에서 주체의 성찰적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연대와 협력의 시민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서구 사회에선 갈수록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청년 4명이 함께 사는 서울 번동 ‘터무늬 있는 집’ 1호는 ‘시민 출자 청년 주택’을 표방한다. 지난해 12월 터무늬 있는 집 1호 입주자들이 모여 대화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제 그러면 처음에 제기했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앞으로 예견되는 비규칙적인 바이러스 폭풍 시대에 대처하는 데 나 홀로 사회는 더 큰 위험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주의 문화가 이렇게 예기찮은 시련에 직면한다고 해서 약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취향ㆍ개성ㆍ자율을 선호하고 존중하는 개인주의적 삶의 태도와 이에 대응하는 사회조직 방식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   외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개인적 자율을 공동체적 연대와 어떻게 공존시키고 결합시킬 것인지에 있을 것이다. 퍼트넘 방식으로 말하면, 때로는 ‘나 홀로’, 때로는 ‘더불어’ 볼링을 치는 생활세계와 문화를 새롭게 구축해야 할 과제를 우리 인류는 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4. 한국사회와 나 홀로 사회

​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도 나 홀로 사회의 경향은 증대해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1인 가구 수는 584만 가구를 넘어섰고, 이는 전체 가구 중 29.3%를 차지했다. 갈수록 늦어지는 결혼 연령과 늘어나는 기대수명을 지켜볼 때, 1인 가구는 우리 사회에서도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   나 홀로 사회에서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트렌드다. 어떤 이들은 넷플릭스, 미(Me)타임, 코인노래방 등 혼자만의 시공간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 예상한다. 다른 이들은 나 홀로 삶이 주는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독서ㆍ운동ㆍ취향 등을 공유하는 소모임들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나 홀로 소비’는 1인 가구 증가가 만든 소비 트렌드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여성 고객이 도시락을 고르고 있다. CU편의점 제공

    서구사회처럼 이러한 ‘나 홀로 사회’는 개인주의의 발전이 가져온 결과다. 특히 밀레니얼세대의 경우 개인에 따른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혼밥, 혼술, 혼영 등 나 홀로 삶의 영역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개인주의의 발전이 가져온 이른바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 시대’는 2020년대에도 계속되고 강화될 것이다.

​    이러한 나 홀로 사회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나 홀로 삶은 자유로움과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 홀로 삶은 결국 쓸쓸하고 고립된 삶이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다. ‘따로’, 그리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일궈가야 할 과제를 우리 사회는 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참고문헌>

    1. 김호기, "나 홀로 사회, 사회적 연대와 공존방식 찾으라",한국일보, 2020.4.14일자.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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