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동농 김가진의 생애와 업적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4.15 03:06

                                                                                  동농 김가진의 생애와 업적

   김가진(金嘉鎭)은 조선 말기의 문신,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이다. 1846년 1월에 서울의 북부 순화방(順化坊)의 신교1)에서 태어났다. 호는 동농(東農)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직계 조상은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의 거두였던 김상용(金尙容)으로 순조 이래 60년 동안 세도정치를 이끈 안동김씨 척족세력의 시조에 해당된다. 부친 김응균(金應均)은 헌종 때 출사해 경상좌도 암행어사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뒤, 1863년에 형조판서, 1865년에 예조판서와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김응균의 서자로서 서얼 출신이기는 했으나 4세 때부터 가숙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7세에 모친상을 당했으며, 29세에 부친이 와병하자 곁에서 약시중을 들며 단지주혈(斷指注血)하였다. 16세에 벌써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했고, 시는 두보의 격조에 버금갔다. 현재 편액 등이 남아 있다.
   1877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그 뒤 규장각참서관(奎章閣參書官)이 되었다. 1880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1881년 장례원주부(掌禮院主簿)가 되었다. 그 뒤 인천항 통상사무아문주사(通商事務衙門主事) · 부수찬(副修撰) · 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駐箚日本公使館參贊官)과 장령(掌令) · 사복시정(司僕寺正) ·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88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駐箚日本公使館參贊官) · 주일본판사대신(駐日本辦事大臣)으로 수년간 도쿄(東京)에 주재하였다. 귀국하여 1891년부터 안동대도호부부사를 지냈다. 1894년에는 군국기무처회의원(軍國機務處會議員)이 되어 내정개혁에 참여하였으며, 병조참의 · 외무독판서리(外務督辦署理) · 전우국총판(電郵局總辦) ·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5년 농상공부대신, 1896년 중추원일등의관을 지냈다. 갑오경장이 실패한 뒤에는 1896년 7월에 조직된 독립협회의 위원에 선임되었고, 1897년에는 신구법(新舊法)을 절충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전소(校典所)의 지사원(知事員)과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900년 중추원의장, 1902년 궁내부특진관(宮內部特進官), 1904년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이 되고, 다시 농상공부대신이 되었다가 충남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906년 충청도관찰사를 지냈으며, 대한자강회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1907년 규장각제학을 역임하였고, 1909년에는 대한자강회의 계승단체인 대한협회의 회장이 되어 친일단체 일진회를 성토하였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수여한 남작(男爵)을 받았다가 그 뒤 반납하고 비밀결사인 대동단(大同團)의 총재 및 고문으로 추대되어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0년 3월에는 대동단 총재의 명의로 포고문 · 통고문을 배포하였으며, 대동단의 박용만(朴容萬) · 나창헌(羅昌憲) · 손영직(孫永稷) · 고광원(高光元) 등과 공동명의로 갹금권고문(醵金勸告文)을 발표하였다. 그 뒤 단원들이 붙잡혀 대동단이 해체된 뒤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김가진 선생은 서얼 출신으로 신분타파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고 갑오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학과 서예로도 유명하였다.
   박학다식과 다재다능의 칭송과 함께 '박지약행(薄志弱行)'이라는 폄하가 병존하고 있다. 한때 망상이 밀려들면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가라앉는 광질(狂疾)로 인해 '벽력대신(霹靂大神)'을 자처하였다. 경사자집에 두루 밝아 젊었을 때 활발한 시사(詩社) 활동을 벌였다. 조선 후기 3대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창강 김택영(滄江 金澤榮) 등과 교분을 나눴다. 또한 자신과 신분이 비슷한 북촌 양반자제들과 어울려 여러 시사를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북사(北社)'이다.
『동농문집(東農文集)』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문을 보면, 당시 어떤 인물들과 교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문에 나오는 '북사제우(北社諸友)'는 참봉 등의 미관말직을 지낸 북촌서얼 출신 동인들을 지칭한다. 그렇다고 교제가 이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취기상서(醉箕尙書)'와 '후옹상서(厚翁尙書)' 등의 구절이 그 증거이다. '취기상서'는 대원군 때 정1품까지 오른 장인 홍재철(洪在喆)로 보는 견해가 많다.
   현존하는 행서와 척독 그리고 창덕궁 내 여러 정자의 미액2)과 영련3)을 비롯해 안동 봉정사 등 전국 각지의 편액들의 글씨를 보면, 이광사를 기본으로 삼아 미불과 동기창 필법을 참고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조선풍의 글씨와 중국풍의 서예를 적절히 조화시켜 박학다식하고 다재다능한 학예의 정서를 잘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집으로 『동농문집(東農文集)』이 있다.
   동농 김가진은 독립 운동에 참가한 유일한 대한제국의 대신으로 1922년 7월 4일 중국 상해에서 타계해 임시정부 국장으로 엄숙하게 장례식이 열렸고 시신은 상하이 만국공묘에  안장되었다.  
   그런데 감가진 선생의 아들 김의한 선생과 며느리 정정화 선생은 모두 독립운동의 공을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으나, 이들을 독립운동으로 이끈 김가진 선생은 오늘날까지도 서훈을 안타깝다.
   올해 임시정부 101주년을 맞이한 만큼 김가진 선생님께 독립운동가 서훈을 수여하고 그 유해를 조국 대한민국으로 봉환해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김가진(金嘉鎭),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201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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