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해방 직후 대전의 이모저모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12.28 19:16
                                     해방 직후 대전의 이모저모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일제시대인 1935년 4월 호남일보(湖南日報)의 제호를 바꾸어 창간된 중선일보(中鮮日報)가 8월 15일 광복 소식을 처음 한글로 알렸다. 해방이 되었어도 대전 시민들은 거리를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다. 행정관청격으로 대전인민위원회가 들어섰으나 힘을 발휘할 능력도 없었고 따르는 시민도 없었다. 패전을 하였음에도 대전에 주둔한 일본군은 일본인들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일본인 거주지역인 대전역 부근을 순회하면서 대전 시민들의 출입을 엄중히 경계했다.
  충남도청 앞에 있던 대전경찰서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근무하던 한국인 경찰 40여 명이 있었다. 그 중에는 고등계형사로 시민들을 수 없이 괴롭혔다는 악질형사가 있어 거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악질 형사들은 처벌되지 않았다.    
  1945년 9월 11일 미군이 대전에 진주하면서부터 대전 시민들은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임시 미군정기 수장으로 카프 대령이 충남도지사로 부임해 오기까지 대전은 행정부재였고 치안부재였다.
  해방이 되자 이념에 따른 좌우익 충돌이 있었다. 그 불씨는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탁과 반탁의 이념적 갈등으로부터 과열되었다. 대전의 유일한 신문 중선일보가 좌익에 접수되어 중앙일보라는 제호로 발간하고 뒤에 노골적으로 인민보라는 제호로 발간하여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그 신문은 카프 대령에 의해 새로운 체제로 개편되어 9월 20일에 동방신문(東邦新聞)으로 재 발간되었다. 그러나 좌익계 인물인 황린(黃麟)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1948년 8월 15일까지 동방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하는 바람에 동방신문은 좌익계 신문으로 의심을 받았다.
  황린은 대전 좌익계의 선도자인 임완빈(任完彬))과 함께 대전과학동맹, 대전연극동맹, 대전문화협회를 조직하고 선봉에 섰다. 그들은 대전 중심가인 원동(본정통)을 대낮에 활보하며 온갖 파업과 투쟁을 이끌었다. 임만빈은 체구가 크고 단단한 편이었으나 우익과의 충돌로 인해 피곤에 지친 듯 했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전에 좌익에 대한 압박을 예감하고 사라졌다가 한국전쟁 당시 다시 대전에 나타나 선봉에서 활동하였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인공치하 하반기에는 힘을 잃은 듯 활동이 뜸해지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반면 황린은 그대로 신문사에 남아 있다가 보도연맹에 가입하는 등 좌익운동을 하며 대전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아 한국전쟁 전 예비검속에 걸린 후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좌익세력이 득세하던 대전에 우익세력의 등장은 그들보다 늦은 1946년 2월경이었다. 이승만이 대한독립촉성회를 조직하고 대전에 지부를 개설하자 그 조직의 핵심이었던 교회목사 남천우가 직접 좌익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 후 서북청년회와 대동청년단 충남시단이 대전에 자리를 잡고 좌익투쟁에 나섰다. 중앙에서 활동하던 공산당원이자 역사학자인 이원조와 영화배우 문예봉이 주동이 되어 조직했던 문화공작대가 대전 중앙극장에서 궐기대회를 할 때 좌익과 우익의 큰 충돌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원동 광장에서 좌익 공산당원이 인민궐기대회를 열 때 서북청년회와 전국학생연맹 충남지부 대동학생단 학생들이 공동으로 그 집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혈투를 벌였다.              
  한편 1945년 10월에 우리 민족과 대전지역의 문화 향상을 위해 이색적이고 비정치적인 시민단체인 계림학회(鷄林學會)가 발족되었다. 이 단체는 종량도(宗郞徒)로 이름을 바꾸고 좌우익의 대립과 충돌 과정에서 방황하는 대전 시민들에게 이념을 떠나서 우리 민족의 슬기를 각인시키고 새로운 국가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뜻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신탁통치의 찬탁이냐 반탁이냐 하는 기로에서 고민하던 중 조선민족청년단 충남도단의 창단 움직이 일자 종량도의 대표 장암(藏菴) 지헌영(池憲英)은 교직으로 떠났다. 그리고 종량도의 주기영, 정해봉, 신초민, 김영옥, 김강정, 정광제, 유상세 등이 단장으로 떠오르는 소정(素汀) 정훈(丁薰, 본명 丁甲秀, 1911-1992) 선생을 중심으로 조선민족청년단 충남도단을 창단하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45년 10월에 문학잡지『향토(鄕土)』(주간 : 정해붕)가 창간되어 3집까지 발간되었다. 동년 10월에 는『백상(白象)』(대표 : 이재복, 주간 : 박희선)이 창간되어 3호까지 발간했다. 1946년 2월에는 시지『동백(冬柏)』이 창간되었다. 그 해 11월에는 좌익 계열의 문학잡지인『신성(新聲)』이 발간되었다.『신성(新聲)』은 뒤에 제호를『현대(現代)』로 바꾸고 월간으로 발간하여 3호까지 나왔다.『현대(現代)』는 제대로 체모를 갖춘 잡지로 대전의 지식인들이 많이 기고도 했는데, 좌악 멤버가 그들의 선전을 목적으로 발간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가 결국 폐간되고 말았다.          
   1945년 겨울에는 중앙극장통에 다방 아랑(阿浪)이 대전역전에 로변(路邊)다방이 중동에 백양(白羊)다방이 새로운 시설로 개업을 했다. 요릿집으로는 도청 앞에 방원(芳園), 상학(三鶴)이 개업하였다. 특히 대중적인 요릿집으로 은행동의 미락(味樂)과 중앙극장통의 옥호(玉壺)는 대전 시민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식당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당시 술대포 한 잔은 20전, 성냥 다섯 개가 1전, 요정 한 번 드나드는데 요리 가격이 20원-30원 정도였다.
   대전 부산 간을 달리던 열차의 소요 시간은 7시간이었다. 그러나 1946년 초부터 급행인 해방호가 등장하면서 한 시간이 단축되어 6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해방호는 열차 색을 황색으로 단장하고 새롭게 출발하여 인기가 있었다.    
                                              <참고문헌>
   1. 박명용,『대전문학과 그 현장』(상), 푸른사상사, 2004.7.25.
   2. 최문휘, "되돌아본 대전 100년, 지난 이야기 4(1940-1950)", 월간 토마토 제51호, 2011.7. pp.68-71.
   3. (사)대전언론문화연구원,『대전?충남언론 100년』, 문경출판사, 2014.3.17.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한국선도의 맥을 이은 일십당 이맥의 괴산 유배지 추적과 활용방안”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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