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 김정구가 부른 눈물젖은 두만강의 님은 박헌영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12.11 02:53
                   고 김정구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의 님은 박헌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이 가사는 고 김정구 가수가 부른 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의〈눈물 젖은 두만강〉의 한 대목이다. 이 노래는 일제의 손에 남편을 잃은 독립군 아내의 처연한 사연을 담아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일제시대에 악극단 단원들은 만주 지역의 동포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는데, 반드시 이 두만강을 넘어가야만 했다. 작곡가 이시우(李時雨)가 소속된 극단 '예원좌'도 이런 악극단 중의 하나였습니다.
   만주의 투먼에서 공연을 마치고 강가 어느 여관에 머물고 있던 밤, 여인의 처절한 통곡이 들렸다. 이윽고 날이 밝은 뒤 이시우는 그 통곡의 사연을 물었고, 여관집 주인으로부터 독립군으로 떠난 여인의 남편이 불과 1년 전 일본군 수비대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 내력을 전해 들었다. 바로 그날 밤, 이시우는 강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사연을 담은 노래 한 곡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며칠 후 악극단 공연에서 한 막간가수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관중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순회공연을 마친 뒤 이시우는 뉴코리아레코드사 소속의 가수 김정구를 찾아가 이 노래의 취입을 제의했고, 김정구는 이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시우가 쓴 가사는 1절뿐이었는데, 김용호가 2절과 3절 가사를 새로 붙였다. 막상 음반으로 찍어내기는 했지만 판매량은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총독부 경무국 당국에서는 이 음반에 대하여 발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해방이 되고 5년이 지나 6·25가 일어나자 김정구는 가족을 이끌고 부산으로 피란내려와 떠돌이 빵장수, 지게꾼, 무대 출연 등으로 고달픈 생존을 이어갔다.
   그로부터 수십년 세월이 흘러간 1970년대, 이미 원로가수가 된 김정구가 무대에서 부를 노래는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취입한 대부분의 노래가 조명암, 박영호 등 월북작사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 '눈물 젖은 두만강'만큼은 온전하게 어떤 금지에도 걸리지 않았고, 분단과 더불어 북에서 월남해 내려온 실향민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유일한 노래로 뒤늦게 유행을 타게 되었다. 여기에다 한 방송국에서 제작한 라디오 반공드라마의 시그널 음악으로 선택되면서 이 노래는 더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가수 김정구는 무대에 오를 적마다 이 노래를 열창했다.
   그런데 요즈음〈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래 가사에서 님은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이란 주장이 나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27년 제1·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구금당한 박헌영이 정신병자 행세를 해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이듬해 임신한 아내 주세죽과 함께 삼엄한 감시체제를 뚫고 두만강 하구,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모스크바로 탈출한 사건의 현장 감독은 영화배우이자 연출가 김용환이었고, 김정구는 그의 친동생이었다. 그때 기획사 예원 소속 무명가수였던 김정구는 박헌영 탈출사건의 기획자인 민족주의자 박승직(두산그룹 창업주)의 도움으로 오케이레코드로 옮겨 35년 ‘눈물 젖은 두만강’을 녹음했다. 가사는 김용환이 ‘박헌영 탈출 성공’을 박승직에게 알리기 위해, 사전 약속에 따라 신문에 기고한 시 ‘눈물진 두만강’을 개작한 것이다. ‘님’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장사로 번 돈을 아낌없이 항일조직에 희사했던 박승직과 박헌영 사이를 연결하던 암호였다고 한다.
   월북 시인 백석과의 연애담으로 유명한 ‘자야’(김영한)가 살았던 경성 최대 요정 대원각(지금의 길상사)의 원주인은 박헌영의 이복누나요 후원자 조봉희였다. “자야는, 조봉희의 딸로 이화여전을 나와 박헌영의 권유로 구미유학을 다녀왔고 역시 박과 남로당의 후원자였던 김소산(김정진)이 데리고 있던 ‘새끼 기생’이었다.”
   이런 ‘뜻밖의 뒷얘기’들은 조선공산당 및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지도자 박헌영(1900-1956)의 삶을 재조명한 6권짜리 <만화 박헌영>(이정기념사업회 기획, 유병윤 그림, 김용석·유병윤 글, 플러스예감 펴냄)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만화 박헌영>의 저자인 평택 만기사 주지 원경 스님은 박헌영의 직계 혈육으로 남쪽에선 유일한 생존자이다.  
   김정구(金貞九, 1916-1998)는 함경남도 원산부 출신으로 원산 광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점에서 점원 생활을 하였다. 작곡가 겸 가수인 맏형 김용환과 성악가인 누나 김안라가 모두 음악인으로 활동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1936년에 뉴코리아레코드에서 형 김용환의 작품인〈삼번통 아가씨〉를 취입하여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오케레코드로 옮겨 〈항구의 선술집〉(1938)을 불렀고, 이듬해 〈눈물 젖은 두만강〉이 크게 유행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김정구는 만요 가수로서의 재능이 두드러져 익살스러운 노래를 여러 곡 히트시켰다.〈왕서방 연서〉,〈앵화폭풍〉,〈모던 관상쟁이〉,〈총각진정서>, 〈수박행상〉 등이 모두 만요이며, 장세정과 함께 부른 듀엣곡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가정전선〉 등이 있다.
   김정구는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 김용환과 함께 태평양가극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60년대에 한국방송 라디오 반공드라마인《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주제곡으로〈눈물 젖은 두만강〉이 쓰이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 노래는 오랫동안 애창되어 한국의 대표적인 트로트곡이 되었다.
   1980년에 대중가요 가수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수여받았다. 말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생활하다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망했다.
                                              <참고문헌>
   1. 역사문제연구소, <박헌영 자료전집 1-9>, 2004.
   2. “가수 김정구”, 네이버 위키백과, 2015.12.10.
   3. 이동순, “두만강의 한을 노래한 김정구- 이동순의 가요이야기 19”, 영남일보, 2007.11.29일자.
   4. 한승동, “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 부르는 ‘님’이 박헌영 선생”, 한겨레신문, 2015.12.10일자. 27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태그 957

시청자 게시판

2,111개(11/106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4321 2018.04.12
1910 한국 경제학 거목’ 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 신상구 316 2022.06.23
1909 2022년 6·25전쟁 72주년 논평 신상구 327 2022.06.23
1908 늙어가는 대한민국, 무엇이 문제인가? 신상구 309 2022.06.21
1907 25세 때 불후의 미완성 교향곡 남긴 슈베르트 사진 신상구 294 2022.06.21
1906 증산도 ‘상생월드센터(SWC)’ 착공 대천제大天祭 거행 사진 신상구 321 2022.06.19
1905 조롱당한 선조와 그 장자 임해군의 악행 사진 신상구 693 2022.06.19
1904 한국 문학, 노벨 문학상 수상 인프라 수준 신상구 324 2022.06.18
1903 고대의 축제 사진 신상구 325 2022.06.18
1902 6·10 만세 운동 사진 신상구 410 2022.06.11
1901 경제, 존경받는 기업인이 많아져야 한다 사진 신상구 393 2022.06.08
1900 <특별기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의 역사적 의의와 제67회 현충 사진 신상구 361 2022.06.08
1899 윤서열 대통령의 제67회 현충일 추념사 전문 신상구 274 2022.06.07
1898 한암당 이유립의 생애와 업적 사진 신상구 410 2022.06.05
1897 백가의 반란과 동성왕의 죽음 사진 신상구 450 2022.06.03
1896 연금개혁을 통한 복지의 지속가능성 확보 사진 신상구 327 2022.06.02
1895 30년간 천착했던 모네의 수련, 용산에 피다 사진 신상구 370 2022.06.01
1894 부여 ‘신동엽문학관’ 문학 성지로 자리매김 신상구 338 2022.06.01
1893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즐길 권리를 되찾아 줍시다 [1] 신상구 304 2022.05.28
1892 과거는 유교국가 떠받치는 인재풀, 조선판 능력주의 사진 신상구 308 2022.05.28
1891 ‘청주대 출신’ 성악가 연광철, 대통령 취임식서 ‘애국가’ 사진 신상구 443 2022.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