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의 역사의식 글쓴이 localhi 날짜 2016.01.14 01:48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의 역사의식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은 조선 후기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1749년 음력 11월 5일에 부친 유춘과 모친 남양 홍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자는 혜풍(惠風)·혜보(惠甫)이며, 호는 영재(冷齋)·영암(冷菴)·가상루(歌商樓)·고운당(古芸堂)·고운거사(古芸居士)·은휘당(恩暉堂) 등이다.
   증조부 유삼익과 외조부 홍이석이 서자 출신이었던 탓에 신분상 서자로 살아야 했다. 다섯 살 때 부친이 27세로 요절하여 모친 아래에서 자랐다. 서자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부친마저 여의었으므로 유득공은 신분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일곱 살 때 모친을 따라 외가인 경기도 남양 백곡으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형편이 어려워져서 일 것이다. 28살에 갑작스레 과부가 된 모친 홍씨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실천한 여성이었다. 친정이 무반 집안이라 글공부를 할 분위기가 아니자,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공부를 위해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모친은 고관들이 많이 사는 서울 경행방(지금의 종로구 경운동)으로 이주한 후,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아들의 학업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유득공의 학문적 성장에 영향을 준 인물은 숙부 유련(柳璉, 1741~1788, 훗날 柳琴으로 개명함)이었다. 유련은 부친인 유춘의 둘째 동생으로 ‘기하(幾何)’를 호로 사용할 정도로 수학과 천문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1776년(정조 즉위년) 서호수의 막관으로 중국을 여행한 북학파 출신의 실학자였다.
   20세를 전후로 하여 유득공은 북학파 인사들과 교유하기 시작했는데, 숙부인 유련을 비롯하여 홍대용ㆍ박지원(朴趾源)ㆍ이덕무(李德懋)ㆍ박제가(朴齊家)ㆍ이서구(李書九)ㆍ원중거ㆍ백동수ㆍ성대중ㆍ윤가기 등이 대표적인 교유 인사였다. 이들은 단순한 교유에서 그치지 않고 ‘백탑동인(白塔同人)’이라는 시동인회(詩同人會)를 결성하기도 했다.
   한시(漢詩)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박제가(朴齊家)·이덕무(李德懋)·이서구(李書九)와 더불어 한시사가(漢詩四家) 또는 후사가(後四家)로 꼽힌다.
   1774년(영조 50) 27세에 소과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다. 그러나 대과 시험인 문과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이 시기 유득공은 암울하고 답답한 자신의 처지를 시에 담아 달래 보기도 했다. 이때 지은 100편의 시가 그의 문집인『가상루집(歌商樓集)』에 수록되었다.
   1779년(정조 3) 32세에 박제가·이덕무·서이수(徐理修)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에 임명되어 '4검서'라 불린다. 이를 계기로 서얼출신이라는 신분제약에서 벗어나 관직을 두루 거쳐 포천현감(抱川縣監)·양근군수(楊根郡守)·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사도시주부(司寺主簿·가평군수(加平郡守)·풍천도호부사(豊川都護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관으로서 유득공은 “나랏일을 하는데 나라 법인『대전통편(大典通編)』이 양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토대로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일처리를 하였다.
   유득공은 개성·평양·공주 등과 같은 국내의 옛 도읍지를 유람하였고 두 차례에 걸쳐 연행(燕行)하고 돌아왔으니, 이 경험을 토대로 문학과 역사 방면에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첫째, 시문과 관련된 것으로서 자신의 시문을 모은『영재집(冷齋集)』과 한국의 역대 시문을 엮은『동시맹(東詩萌)』(1772)이 있다. 25세 때 기자(箕子)로부터 후백제에 이르는 시기의 우리나라 한시를 모은『동시맹(東詩萌)』을 엮으면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서사 시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둘째, 중국 여행과 관련된 것으로서 청나라 문사들의 시문을 모은『중주십일가시선(中州十一家詩選)』(1777)이 있으니, 나중에『병세집(竝世集)』(1796)으로 완성되었다. 연행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서『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연대재유록(燕臺再游錄)』이 있고, 연행할 때의 단상(斷想)들을 모아 놓은『금대억어(金臺臆語)』가『후운록(後雲錄)』에 수록되어 있다. 셋째, 신변 잡사와 단상들을 연대순으로 써내려간『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와 한국의 세시풍속을 최초로 기록한『경도잡지(京都雜志)』가 있다.『경도잡지』는 뒤에 김매순(金邁淳)의『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홍석모(洪錫謨)의『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넷째, 역사서로서『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발해고(渤海考)』?『사군지(四郡志)』가 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이십일도회고시』는 위만조선의 멸망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연구하며 도읍지의 변천에 주목, 그에 따른 사실들을 시문으로 지은 것이다.
   그는 역사가라기보다는 시인이었으므로, 그의 역사인식은 문학론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북학파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시를 짓기 위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학작품들을 섭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에 따라 중국 서적을 다양하게 섭렵하였고, 한국역사에도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만주 · 몽골 · 회회(回回) · 안남(安南 : 베트남) · 남장(南掌 : 라오스) · 면전(緬甸 : 미얀마) · 타이완 · 일본 · 류큐(琉球) 및 서양의 홍모번(紅毛番 :영국) · 아란타(阿蘭陀 : 네덜란드)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중국 일변도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그의 역사관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지만, 처음에 남방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출발하여 점차로 북방 중심으로 변모해갔고, 그 결과『발해고』?『사군지』를 저술하여 한국사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발해고』를 통하여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하였고,『사군지』에서는 북방 역사의 연원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특히 혁신적인 역사관을 바탕으로 쓰인『발해고』는 한국사학사에서 보배와 같은 책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고려가 발해 역사까지 포함된 ‘남북국사(南北國史)’를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비판한 뒤에, 발해를 세운 대조영(大祚榮)이 고구려인이었고 발해의 땅도 고구려 땅이었다고 하여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주장함으로써 ‘남북국시대론’의 효시를 이루었다. 이상과 같은 그의 역사 인식은 나중에 정약용(丁若鏞)의『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와 한치윤(韓致奫)의『해동역사(海東繹史)』등과 같은 연구 업적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1800년 그를 아끼던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자, 유득공은 1801년(순조 원년)에 풍천부사에서 물러난 뒤 칩거하며 저술에만 몰두했다. 1807년 9월 1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성해응이 은거하던 포천 향산에서 남쪽으로 20리 떨어진 양주(楊州) 송산(松山 :지금의 의정부시 송산동)에 묻혔다.
   유득공이 서자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32세에 규장각 검서관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관직 생활을 거쳐 만년에 정3품까지 올라 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정조의 배려와 서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갔던 조선 후기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유득공이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등과 같은 북학파와의 교유가 큰 영향을 끼쳤다. 문장가로 출발하여 당대의 시인으로, 나아가 발해 역사를 되살린 역사가로서 큰 족적을 남긴 유득공은 앞으로 더욱 조명 받아야 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유득공은 슬하에 장남 본학(本學)과 차남 본예(本藝) 등 2남 2녀를 두었으며, 두 아들 모두 규장각 검서관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1. 정진헌,『실학자 유득공의 고대사 인식』, 신서원, 1998.4.1.
   2. “유득공(柳得恭)”, 네이버 두산백과, 2016.1.14.
   3. 정성희, “발해를 우리 역사로 서술한 실학자 유득공(柳得恭)”, 네이버캐스트, 2016.1.14.
   3. 이상수, “발해사 선구자'유득공'삶과 사관 조명”, 한겨레신문, 1998.4.28일자. 14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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